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주요 경매가 열린 다음날이면 <뉴욕타임스>의 목 좋은 자리엔 어떤 작품이 얼마에 팔렸는지에 대한 얘기가 크게 실린다. 할리우드로부터 날아오는 경매 소식도 최근엔 꽤 잦아졌다. 줄리언스 옥션은 지난 12월6일 마릴린 먼로의 러브레터를 포함한 물품 300여점을 경매에 내놓았다. 영화사적으로 대단한 물건은 아닐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돈이 이 경매에 몰렸다. 할리우드 경매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고,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진귀한 (혹은 별난) 물품도 계속 나오고 있다. 이참에 할리우드 경매의 이모저모를 정리해보았다.
지난 11월12일 뉴욕, 크리스티의 전후•현대 미술(Postwar and Contemporary Art) 경매가 열렸다. 이날 경매의 화제작은 앤디 워홀의 두 작품 <세명의 엘비스>와 <네명의 말론>. 영화 <플레이밍 스타>(1960)의 총 든 엘비스 프레슬리와 <위험한 질주>(1953) 속 오토바이 탄 말론 브랜도의 모습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들이다. <세명의 엘비스>는 8190만달러(900억원)에, <네명의 말론>은 6960만달러(764억원)에 거래됐다. 예상가는 웃돌았지만 경매장에서 박수는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연간 조 단위의 돈이 거래되는 예술품 경매 시장의 규모를 짐작게 하는 풍경이다. 1744년 영국 런던에서 서적 경매로 출발한 소더비와 1764년 미술품 경매로 시작한 크리스티의 역사는 오늘날 경매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경매의 역사는 250년이 훌쩍 넘었지만 예술품 경매가 일종의 ‘쇼’가 된 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다. 할리우드 경매의 역사도 이제 막 50년을 향해간다. 1970년의 ‘MGM 경매’는 할리우드에 경매 바람을 일으킨 중요한 사건이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영화잡지나 신문을 통해 알음알음 영화 카드나 포스터 같은 ‘영화 기념품’을 수집했다. 영화 소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론 잇속에 밝은 이들도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의상 스탭으로 일한 켄트 워너는 막대한 양의 영화 의상과 소품을 빼돌려 개인 컬렉션을 구축했고, 그것들을 팔아 돈을 챙겼다. 한편 <오즈의 마법사>(1939),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등을 제작한 MGM은 경영난을 겪다 1969년 LA의 사업가 커크 커코리언에게 매각된다. 커크 커코리언은 제임스 토머스 오브리 주니어를 사장으로 임명하고, 오브리는 회사 창고에 고이 잠들어 있던 35만벌이 넘는 영화 의상을 비롯해 수천점의 영화 물품을 경매에 부친다. 경매는 성공적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신었던 빨간색 루비 구두는 1만5천달러(1600만원)라는 (당시로선 상당히) 놀라운 가격에 팔렸고, <타잔> 시리즈에서 조니 와이즈뮐러가 입은 손바닥만 한 타잔 스커트도 비싼 값에 컬렉터의 품에 안겼다.
할리우드 경매 시장의 영원한 스타
경매장에 작품이 떴다 하면 수시로 최고가를 경신하는 작가들이 있다. 피카소, 앤디 워홀, 제프쿤스가 대표적이다. 미술품 경매 시장의 스타가 이들이라면, 할리우드 경매 시장의 스타는 누가 뭐래도 마릴린 먼로다. 먼로를 빼놓고 할리우드 경매를 얘기할 수 없을 만큼 먼로의 인기는 사후에도 여전히 뜨겁다. <7년만의 외출>(1955)의 지하철 환기구 장면에서 먼로가 입고 나온 흰색 홀터넥 드레스는 역대 할리우드 영화 기념품 경매에서 최고가로 팔린 아이템이다. 2011년에 열린 경매에서 먼로의 억만장자 팬은 460만달러(50억5천만원)에 이 드레스를 사갔다. 그전까지 최고가를 기록한 먼로의 의상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생일 파티 때 입었던 드레스(126만7500달러)였고,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의 그 유명한 핑크색 드레스는 31만달러(3억4천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12월6일 줄리언스 경매에선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던 전설의 메이저리거이자 먼로의 두 번째 남편인 조 디마지오가 먼로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1954년 10월9일자 소인이 찍힌 3페이지 분량의 이 편지는 두 사람의 9개월간의 결혼생활이 막 끝난 뒤 쓰였다. 먼로의 변호사가 공개적으로 두 사람의 이혼 결정을 발표한 날짜는 10월4일. “당신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혼 발표를 하며 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고 디마지오는 편지에 썼다. 먼로의 무덤에 20년 넘게 장미꽃을 보낸 디마지오의 일화는 워낙 유명한데, “Dear Baby”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도 먼로를 향한 디마지오의 사랑이 그대로 담겨 있다. 편지는 7만8185달러(8600만원)에 익명의 낙찰자에게 돌아갔다. 먼로가 자신의 세 번째 남편인 극작가 아서 밀러에게 쓴 편지도 이날 4만3750달러(4800만원)에 팔렸다. 이번 경매엔 먼로의 러브레터를 포함해 속옷, 액세서리, 개인 용품 등 300여점의 유품이 나왔다. 레이스 브래지어(2만달러), 립브러시(1만달러), 얼 모란의 사인이 담긴 누드화(3만7500달러)가 각자의 주인을 찾아갔다.
명작이기 때문에 비싼 도로시 구두, 채플린 모자
현대미술 시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흥미롭게 분석한 책 <은밀한 갤러리>에서 저자 도널드 톰슨은 “미술품 가격은 경제학에서 톱니효과 혹은 관성효과라 불리는 래칫효과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톱니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톱니가 높이 올라가면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건데, 이를 통해 미술 시장에서 한번 뛴 가격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전한다. 그러면서 소유욕 강한 거부의 컬렉터들이 작품의 가격을 상상 이상으로 띄워 놓는다고 부연한다. 또 소더비의 유명 경매사 토비어스 메이어는 “최고 명작은 최고로 비싼 작품이다. 시장이 워낙 똑똑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미술평론가 로버트 휴즈는 “미술품 가격은 실제 또는 유도된 희소성과 맹목적이면서 비이성적인 욕구가 서로 만나 결정된다”고 했다. 작품은 한정적이고, 예술품 경매에 뛰어든 ‘슈퍼’ 부자들은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과시하는 데서 큰 만족감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미술 시장은 경제 불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경매 물품의 가격 결정과 관련한 이 얘기는 할리우드 경매 시장에도 무난히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매에 나온 물품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가격은 계속 상승한다. 앞서 언급한, 1970년 MGM 경매에서 1만5천달러에 팔린 <오즈의 마법사>의 루비 구두(<오즈의 마법사>에 쓰인 루비 구두는 총 4켤레로, 신발별로 소유자가 다르며 경매가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도 1988년엔 16만5천달러로 가격이 뛰었고, 2011년 경매에선 200만~300만달러의 입찰가가 예상됐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스티븐 스필버그를 포함한 이들은 이날 경매에서 구두를 낙찰받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에 기증했고(입찰가는 미공개), 현재는 국립미국사박물관이 보관 중이다. 구두 한 켤레의 가격이 40여년 만에 200배나 뛰었다. 1970년 경매에서 2400달러(260만원)에 팔렸던 <오즈의 마법사>의 겁쟁이 사자 의상도 2006년엔 82만6천달러(9억800만원), 올해 경매에선 307만 7천달러(34억원)로 가격이 껑충 뛰었다.
할리우드 경매 시장에서 물품의 가격은, 당연한 얘기지만 작품의 명성과 인기에 비례한다. 현대미술의 경우 딜러나 경매회사에 의해 작품의(경제적) 가치가 먼저 매겨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영화의 경우 대중에게 사랑받은 영화들이 경매장에서도 높은 값을 받는다. 비싸기 때문에 명작이 아니라, 명작이기 때문에 비싸게 팔린다. <카사블랑카>(1942)의 중요 소품이었던 ‘릭의 피아노’를 기억할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먼이 험프리 보가트의 술집에서 일하는 악사 샘에게 “샘, 어서 연주해줘요”라며 <애즈 타임 고즈 바이>를 청하는 장면에서 사용된 피아노가 올해 340만달러(37억원)에 낙찰됐다. 이번 본햄 경매를 감독한 캐서린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영화 기념품을 수집하는 데 원칙이 있다면, 그 원칙들엔 이런 사항이 포함될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작품인가, 그 물품이 영화의 내러티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얼마나 많은 카피본이 존재하는가, 영화에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카사블랑카>의 피아노는 충분히 340만달러의 가치를 하는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사의 걸작으로 첫손에 꼽히는 <시민 케인>(1941)의 시나리오가 1만5천달러(1600만원)에 팔리고, 찰리 채플린의 심벌인 지팡이와 모자가 각각 4만2천달러(4600만원), 5만8천달러(6400만원)에 거래되는 것도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닌 것이다.
코 푼 휴지에서 디카프리오와 함께하는 우주여행 티켓까지
‘뭘 또 이런 것까지…’ 싶은 생각이 드는 물품도 종종 경매에 나와 시장을 달군다. 그중 오스카 트로피는 논란의 아이템. 미국영화아카데미협회는 1950년부터 수상자들의 동의하에 트로피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경매에 나오는 오스카 트로피가 1930~40년대의 것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11년엔 <시민 케인>으로 오슨 웰스가 받은 남우주연상 트로피가 경매에 나와서 86만달러(9억5천만원)에 거래됐다. <시민 케인>의 각본상 트로피는 86만1542달러에 팔렸는데, 한국의 이랜드그룹이 이 트로피를 낙찰받았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6)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해럴드 러셀은 아내의 병원비를 부담하기 위해 돈이 필요해 1992년 경매에 트로피를 내놓았다(6만500달러). 그는 “오스카 수상의 영예를 간직하는 것보다 아내의 건강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오스카 트로피도 뿔뿔이 흩어져 새 주인들을 만났다. 비비안 리가 받은 여우주연상 트로피는 1993년 51만달러(5억6천만원)에 팔렸고,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이 수상한 작품상 트로피는 1999년에 140만달러(15억4천만원)에 팔렸다. 작품상 트로피를 산 사람은 다름 아닌 마이클 잭슨이다.
스타들의 머리카락 뭉치도 종종 경매에 나오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니콜 키드먼 등 유명 배우의 신인 시절 오디오 영상을 담은 필름도 거래되며, 1923년 LA 할리우드 언덕에 세워진 ‘HOLLYWOOD’ 간판도 이베이 경매에 나와 45만400달러(5억원)에 팔렸다. 또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이던 스칼렛 요한슨은 2007년 <더 투나이트 쇼>에 나와 코 푼 휴지를 비닐봉지에 담아 사인한 뒤 경매에 부쳤다. 요한슨의 감기 바이러스가 묻은 휴지는 이베이에서 5300달러(580만원)에 팔렸고, 수익금은 자선 단체 USA 하베스트에 기부됐다. 최근엔 경매로 발생한 수익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스타들이 늘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에이즈 환자를 돕기 위한 자선 행사에서도 재밌는 경매상품이 등장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옆자리에 앉아 버진 갤럭틱의 우주 여객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경매 물품으로 나왔다. 디카프리오 옆 좌석은 150만달러(16억5천만원)에 팔렸다. 이 경매 상품을 처음 떠올린 이는 아마도 <그래비티>를 보고서 조지 클루니와 단둘이 우주에 남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클루니나 디카프리오나 내겐 너무 먼 그대들이지만, 부럽긴 하다, 그 입찰자!). 이처럼 희귀 아이템들이 경매 시장에 나오는 것을 보고 있자면, 상품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도 어떻게든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미국 그리고 할리우드의 능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가장 할리우드스럽게, 영화 경매도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