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섬광 혹은 소멸>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창의적인 아티스트필름 및 비디오들이 내년 1월31일까지 대거 상영된다. 한편 이곳에서는 <논픽션의 기술들>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주목할 만한 주요 다큐들이 이미 상영되기도 했다. 한편 이곳에서는 얼마 전 아세안필름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이곳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영화관으로, 서울에 숨어 있는 좋은 영화관이다. 최근에야 이곳에 대해 잘 알게 된 우리는 전주영화제, 세네프영화제 등의 프로그래머를 지냈고 영화 <딱정벌레>의 감독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영화관의 모든 일을 담당하는 김은희 학예사를 만나서 그간의 일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물었다.
-지금 하고 있는 행사부터 물어보자. <섬광 혹은 소멸>전의 특별한 점이 있나.
=예컨대 이번에 했던 포럼 제목이 ‘이미지의 막다른 길: 전시와 상영 사이에서’였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전시된 영상 설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담겨 있다. 어떤 이는 영상 설치에 대해 회의를 가질 수도 있다. 그 영상에 드라마가 있다면, 전시장에서 그걸 끝까지 볼 수 있는가 하고. 한편 어떤 사람은 영화는 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봐야 하므로 폐쇄적이고 그렇지 않은 전시가 훨씬 민주적이라고도 하더라. 그렇다면 그런 공간의 차이를 없앴을 때 관객이 어떤 현상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한편의 영화를 하루 종일 극장에 틀어놓고 관객이 들락날락하면서 보게 했다. ‘올 데이 스크리닝’이라고 이름 지었다. 단편이라면 한 섹션이 계속 돌아가는 거다. 전시장과 극장의 동시 체험이랄까.
-미술관 속 영화관이라는 특정성이 있겠다.
=현대미술이라는 틀에서 생각하려 한다. 영상물 자체가 현대미술 안에 있다. 장 뤽 고다르, 샹탈 애커만, 하룬파로키처럼 이미지가 무엇인지 연구하는 이들의 작품을 상영하면 좋을 것 같다. 현대미술과의 교집합도 생기고 영화 자체에 대한 연구도 병행할 수 있는 그런 작품들. 하지만 뭐 꼭 심각한 영화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여름에는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상영전도 고려 중이다.
-지금까지 했던 상영전 중에는 어떤 것이 기억에 남나.
=내가 여기 와서 처음 기획한 것이 <논픽션의 기술들>이다. DMZ다큐영화제에서 상영했던 프로그램들인데 굉장히 좋아서 갖고 왔다. 말 그대로 어떻게 리얼리티를 찾아낼 것인가 하는 논픽션의 기술을 담은 영화들이었다.
-프로그래밍을 할 때는 주로 어떤 점을 염두에 두나.
=형식, 현실, 세계 등을 질문하고 또 토론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카이브적인 성격에서 시네필들을 만족시키고 마는 것이라면 사실상 시네마테크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더 나아가서, 이미지란 무엇인가, 영화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확장해보고 싶다.
-극장의 존재를 알리는 게 좀 필요하겠다. 어떤 대안이 있나.
=정통적인 방식으로 시네클럽을 자체적으로 운영해볼까도 생각 중이다. 상영과 관련된 라이브 퍼포먼스를 해보는 것도 고려 중이다. 가령 마르셀 브로타스 영화를 극장 옆에 있는 다목적홀에서 천막 치고 사운드는 모노로 해서, 마치 영화사 초기의 상영 조건처럼 해놓고 상영한 적이 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더라. 그런 식으로 영화, 이미지 등을 보고 생각하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한편으로는 토론의 자리도 많이 만들 생각이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들은 무엇이 있나.
=작가로 본다면 장 뤽 고다르, 레이몽 드파르동, 샹탈 애커만 등이 있고, 20년대 추상영화들에 대한 계획도 있다. 영화에서 색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도 고려 중이다. 가령 루키노 비스콘티의 색과 고다르의 색은 다른 느낌 아닌가. 관람자가 많은 여름에는 텍스에이버리의 애니메이션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