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권리 나의 의무’라는 표어를 내건 ‘영화인을 위한 법률강좌’가 시쳇말로 ‘뜨고 있다’. 사단법인 영화인회의와 법무법인 한결 소속 조광희 변호사가 같이 진행하는 이 강좌는 두 차례 강의를 통해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기획-시나리오 집필단계의 법률문제’, ‘투자유치, 감독/배우/스탭 구성 단계의 법률문제’ 등 이미 열린 두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은 작지 않은 대학 강의실이 가득 찰 정도. 눈대중 해서 130명 안팎은 되는 듯했다. 앞으로 남은 ‘연출-제작과정의 법률문제’, ‘마케팅-배급과정의 법률문제’ 등 두 강의도 ‘대박예감’이다.
첫 강의의 화제는 단연 조광희 변호사가 이틀 동안 준비했다는 시나리오였다. 이 화제의 시나리오는, 영화를 기획해서 시나리오로 쓰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법률적 문제를 한편의 시나리오로 쓴 교재였다. 게다가 어눌한 듯, 수줍은 듯하지만 핵심을 짚어가는 조광희 변호사의 교수법도 정겨웠다. 이어진 강의에서도 영화제작 단계별로 계약을 맺을 때 필요한 계약서 견본과 법률적인 요건을 갖추는 데 필요한 ‘체크 리스트’까지 요약정리해주는 등 ‘폭탄세일’(조광희 변호사가 영화쪽에서 수임받을 일이 있을지 심히 우려됨)을 거듭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큰 판을 벌일 게 아니라 한 20명 정도 모여서 알콩달콩 공부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지가 나가자 수강 신청자가 쇄도해 영화인회의 실무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일부에서는 ‘면학’ 분위기를 고려해 인원을 제한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강좌를 기획한 취지에 맞게 전면 개방하기로 하고 부랴부랴 넓은 강의실을 섭외했다.
이번 강좌는 법무법인 한결의 두 변호사가 주동한 세미나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여름, 조광희 변호사의 법률서비스(?)를 받아온 몇몇 회사의 실무자들이 조광희 변호사와 같이 일하는 박경신 변호사(이분은 미국 변호사에다 대학교수이기도 하다)의 ‘지도’로 미국의 영화관련법에 대해 공부를 몇 차례 한 적이 있다. 외국사람만 봐도 가슴이 철렁하는 처지에 온통 영어로 된 법안과 계약내용을 속속들이 다 이해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의 계약관례가 시시콜콜 다 명문화하는 것이라서 일면 장황해보이지만, 핵심은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하게 약속하는데 있다는 것쯤은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그 세미나가 끝나고 필자는 ‘한국판’으로 다시 하자고 조광희 변호사를 부추겼다. 한국영화의 산업적 규모가 커지고 복잡다단해지면 당연히 다툼의 소지가 커질 것이고, 이런 다툼을 예방하는 지름길은 법률적인 이해도를 넓히는 데서 출발한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영화 제작과정 전반에 얽히고 설켜 일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도 몰라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당연히 복무해야 할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어물쩍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 때문에 적지 않은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외부에 알려져서 입방아에 오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쉬쉬하고 넘어가는 대표적인 사례가 최종 편집권을 둘러싼 제작사와 감독의 마찰이다. 사전에 협의해서 계약서에 서로의 권리를 명문화하면 되지만, ‘관행에 따른다’고 쓰거나, 좋은 게 좋다며 얼버무리고 넘어갔다가 서로 뒤에서 험담하는 일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도 이런저런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자면 각자의 법률적인 권리와 의무에 대해 최소한의 상식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강생 가운데 현역 감독과 얼굴을 알 만한 제작자가 한명도 없다는 게 아쉽다. 소모적인 다툼의 예방책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