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뜻의 삼포세대라는 말이 이미 유행하고 있지만, 취직하기 어렵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혹은 언제 회사가 망할지 모르는), 그리고 재취업이라는 단어는 하늘의 별따기와 동의어가 된 지 오래인 지금의 세상에서 희로애락의 무대이자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일’이다. 밥벌이 문제로 밀당하느라 애초에 연애고 결혼이고 출산이고 여력이 없다. 지금을 견뎌서 될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영영 나아지는 일 같은 건 없으리라는 근심이 더해지고 나면 선택의 여지는 영영 없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머리를 맞댄다. 전통적인 방식의 취직, 그렇게 생긴 직업, 그렇게 하게 된 일, 그렇게 보장받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까지 배운 적 없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내기. 제현주의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이하 <안내서>)는 그런 고민의 답이다.
하나의 답일 수 있다. 정답이 아니다. 정답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한동안 불었던 힐링과 멘토 붐은 정답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의 발버둥이었다. 멘토가 상담하는 유의 책에 자주 등장했던 것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열정페이’다. 하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홀대받는다. <안내서>는 그 문제에 대해 <씨네21>에 실렸던 번역가 정영목 인터뷰를 인용해 막연한 낭만주의가 아닌 현실적인 태도로 직업과 일을 구분하고 직업보다 일이 더 크다고 말한다. 더불어 “돈이 좀 있어야 마음껏 놀듯이 일할 수 있다”는 점도 짚는다. 어떤 극단적인 대답이 해결책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현실을 알아야 오늘을 지탱할 수 있고 이상이 있어야 지속 가능한 일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이란 무엇인가. “현실에서 일은 ‘그저 돈벌이’도 아니고, ‘감히 돈벌이’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돈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욕구를 줄이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이유가 ‘잘나가서’(더 벌 수 있어서)가 아니라 ‘덜 일하기 위해서’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최소생계비’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액수에 맞게 일을 잡는다. 다른 말로 하면 ‘더 많이’를 내려놓는 일이다.
<안내서>를 읽으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규직의 일자리를 가져봤다가 그만두고 다른 가능성(소득은 적더라도 만족도가 크고 지속 가능한)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솔깃하지만, ‘내 자리’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책의 사려깊음조차도 원망스럽지 않을까. 30대 후반의 데이트리퍼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친구들과 나눠온 얘기를 정리해놓은 듯한 편안함을 느꼈지만, 첫 직장을 갖기 위해 많은 것을 그저 참고 무릅써야 하는 이들에게는 남의 얘기일 뿐이겠지. 어렵다. 선택지를 가져본 적 없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는 누가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