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근 감독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을 펴냈다. 그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옴니버스 인권영화 <어떤 시선>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이야기로 단편 <얼음강>을 만들었다. 그때 미처 못다 한 이야기가 이번 책으로 묶였다. 서문에서도 밝혔듯, 이 책은 평소 인권과 평화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지는 않았던 감독 자신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만나면서 겪게 된 생각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다. 전세계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인한 수감자 중 한국인의 비중이 92.5%로 가장 높은 상황에서, 병역이야말로 가장 민감한 이슈인 한국 사회에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주제로 영화에 이어 책까지 냈다.
=<얼음강>이 개봉한 뒤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왔다. 나도 40분짜리 단편영화에 채 담지 못한 내용들이 있어서 아쉬웠던 터라 수락했다.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책에 실린 12명의 인터뷰이들을 만났고 그 사이사이 글을 썼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때,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김경묵 감독 후원의 밤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맞춰 책이 나왔으면 해 서둘렀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남다른 이유가 있나.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안을 받고 어떤 영화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대학 졸업영화인 단편 <봄>(입대하는 날 군대 대신 동물원으로 향한 청년의 이야기)을 떠올렸다. 당시 나도 입대를 앞두고 그저 ‘군대 가기 싫다’라는 생각을 하며 만든 영화였다. 영화 프린트가 나온 다음날 입대했는데 그곳에서 집총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처음 봤다. 이후 2000년대 중반, 사회적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이슈가 터져나와 좀더 알게 됐다. <얼음강>을 만들며 직접 병역 거부자들을 만나고 병역 거부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관심을 가졌다. 특히 한국의 병역 거부자들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고 한편으로 편견도 있었다.
-책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그 가족,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지지하는 활동가, 법조계 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입을 빌려 한국의 병역 거부의 역사를 짚고 있다.
=이 이슈가 근 10~20년 사이에, 민주화 과정에서 터져나온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의 병역 거부자들은 일제 징병을 거부하고 옥고를 치러 독립유공자가 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죄가 되고 어떤 때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이 이슈는 전쟁의 역사와 같이 온 거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건 인간의 본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한국의 병역 거부자들에게 유독 70년대가 가혹했다는 점도 밝히고 싶다. 병역 거부로 수감 생활을 마쳤는데 출소 당일 재구속된 사례도 있다. 국가가 사과하고 배상해야 할 문제다.
-동료인 김경묵 감독의 첫 심리 공판을 지켜본 걸로 안다.
=마음이 무겁다. 올여름 나는 책을 쓰고 그는 소견서를 쓰며 종종 술잔을 기울였다. 12월24일이 그의 선고 공판일이다. 병역 거부자들에게 그날은 가슴 아픈 날이기도하다. 2008년 12월24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대체복무 도입논의가 전면 백지화된 날이다. 수많은 병역 거부자들이 많이 울었다.
-병역 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 마련을 강조했다.
=전향적인 판결도 있었지만 ‘법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구형을 계속 해왔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이 바뀌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책에 등장한 12명의 사연은 결국 그들이 어떻게 ‘자기다운 삶’을 살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사회가 개개인의 삶의 기준을 존중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