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올겨울이 예년에 비해 따뜻할 거라 말했다. 순간 어떤 안도에 이르렀다. 누군가 올겨울이 예년에 비해 추울 거라 말했다. 순간 어떤 불안이 밀려왔다. 이런저런 말들 가운데 폭설이 내린다는 예고 속에 에스키모처럼 무장하고 나갔다가 쨍쨍한 하늘 아래 머쓱해져서는 빗나간 날씨 예보에 쌍욕 한 바가지 걸쭉하게 퍼부을 때가 얼마나 잦은 이 겨울인지. 그럼에도 어떤 준비나 어떤 대비로 나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일찌감치 수비할 수 있음에 안도하는 마음, 그 안심은 또한 얼마나 두둑한 배짱일 수 있는지.
얼마 전 엄마 친구 딸인 공주가 죽었다고 했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터라 장례를 치른 뒤에야 소식을 전해 듣고 어머머, 어째, 소리만 연신 반복해댔던 나는 나보다 열살이나 어린딸에게서 홀로 남겨진 두살배기 손자를 포대기에 업은 공주 아줌마를 떠올렸다. 내가 죽인 거야. 크루아상 먹고 싶다는 소리만 안 했어도 우리 공주가 나 보란 듯이 무단횡단을 했겠냐고.
얼마 전 제자의 직장 동료 남편이 죽었다고 했다. 체기가 있는 것처럼 가슴이 쓰리고 답답하다며 내내 움켜쥐더니 그길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채 백일도 안된 딸아이가 빽빽 울어대도 장례식장에서 넋이 나간 아이 엄마는 젖 한번 물리지 않은 채 어이없는 헛웃음만 연신 짓더라고 했다. 내가 죽인 거야. 설거지와 119에 전화하는 일, 그 두 가지 수순을 바꿔 행하기만 했어도 내 남편이 나 보란 듯이 눈뜬 채 눈감았겠냐고.
얼마 전 아빠의 불알친구가 죽었다고 했다. 미국으로 이민 간 뒤에 온갖 잡일을 해가며 자식들을 유명 대학에 보내 우리 집 딸들에게 시시때때로 스트레스를 받게 했던 아저씨가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고 했다. 지난 추석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 이미 만취한 채로 우리 집에 들러서는 엄마에게 술상을 내오라고 떼를 썼고 말리는 내 팔을 잡아채며 한 말 또 하고 또 해가며 진땀깨나 빼게 했던 아저씨. 네 아버지 불쌍하다, 불쌍하다, 불쌍하다…. 간신히 택시 뒷좌석에 아저씨를 밀어넣었을 때 내가 본 아저씨의 눈물에서 흠칫 오늘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이는 나만의 괜한 억지 부림이 되려나.
그 후로도 꽤 많은 부고가 날아들었다. 마흔줄에 들어선다는 건 내 친구 엄마의 죽음에 하루쯤 부의금을 내는 일이 아니라 내 친구의 죽음에 며칠 밤을 새워야 하는 일임을 실감하는 요즘, 습관이 하나 생겼다면 먼저 안부 묻기와 지키지 않을 약속은 하지도 않기다. 그 친구가 갔어? 그 친구가 왜! 그 친구가 갔어? 그 친구한테 한우 사준다는 공수표 세번이나 날렸는데!
나도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의 두려움보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지 않았을까 하며 하늘을 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늘 한결같은 얼굴.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는 건 어쨌거나 살아보자는 얘기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