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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식당 이모
권혁웅(시인) 2014-12-12

[ 식땅 이모 ]

겉뜻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속뜻 박애주의자

주석 세상에는 이모가 참 많다. 동네 밥집마다 식당 이모가 계신다. 청소할 때에는 청소 이모가 오고 이사할 때에도 그릇을 정리해주러 이모가 온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식당 고모나 청소 고모는 다 어디 가신 걸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삼촌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삼촌은 다정하고도 무서운 존재다. 장자권 때문이다. 옛날에는 먼저 태어난 남자아이가 아버지의 권한을 독점했다. 문제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삼촌과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데 있다. 아버지는 이미 늙고 맏이는 아직 어린데 삼촌은 한창 나이다. 장자의 권한을 순순히 인정하면 그는 자애롭고 든든한 삼촌이 된다. 반면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그가 다른 마음을 먹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단종에서 햄릿까지 맏이들이 대면해야 했던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삼촌이 풍기는 음험한 권력투쟁의 냄새, 이것이 식당 고모나 청소 고모가 없는 이유다. 고모는 아버지와 삼촌 편이지 어머니와 외삼촌 편이 아니다. 권력은 늘 남자의 전유물인데 고모는 처음부터 남자 편이었던 것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친정을 잃고 시댁에 항복한 불쌍한 적군이지만 고모에게는 아군이 친정이다.

이모는 정반대다. 삼촌이 부계라면 이모는 모계다. 삼촌이 아버지나 장자와 권력의 승계를 두고 다툰다면, 이모는 어머니와 함께 소외된 이들과 연합을 이룬다. 어머니가 시어머니가 되면 이모는 소외된 이들에게서도 다시 한번 소외된다. 이모에게는 어떤 권력도 주어지지 않으며, 다만 자애로운 어머니의 역할만이 주어진다. 그녀는 ‘그림자 어머니’가 된다. 우리가 식당에서 이것 좀 치워달라고, 주문 좀 받으라고, 계산서 가져오라고 이모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칭얼대는 것이다. 엄마, 밥줘. 엄마, 방 좀 치워줘.

용례 게다가 그분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그 큰 식당에서 이모 혼자서 박애주의, 사해동포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분들은 비폭력주의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간디를 존경하지만 정작 우리가 밥 먹는 곳, 어질러놓은 곳마다 성자, 성녀가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그런 분들을 분신하게 만드는 동네가 있다면, 바로 거기가 지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