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아는 게 없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가는 길을 어른이 마땅히 지도해주어야 한다고 많이들 생각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또래 때의 나 자신을 떠올려보면 어른들의 순진한 착각은 우스울 정도다. 자녀의 어떤 거짓이든 적발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함을 지녔던 부모를 둔 친구들의 ‘사생활’. 아이들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야마다 에이미의 <풍장의 교실>은 초등학교 5학년, 이제 막 새 학교에 전학해 선생님의 예쁨을 받고 그것을 이유로 여자애들의 질투를 사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 모토미야 안이 주인공이다. 인내의 한계를 넘어버린 소녀는, 이제 그만두기로 한다. 유서를 위한 준비메모를 완성하고, 목을 맬 줄을 찾으러 부엌에 갔는데, 옆방에서 엄마와 고등학생인 언니의 대화가 들린다. 남자친구가 섹스를 잘 못한다고 투덜거리던 언니는 ‘나’, 그러니까 동생이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다며 자신의 따돌림당하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를 위해 슈크림을 만들어주기로 한다. 그제야 ‘나’는 어떤 일을 저지르려고 했는지 깨닫는다. 나 자신이 죽는 건 전혀 무섭지 않지만 남는 사람들 일을 생각하면 공포로 몸이 떨린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는 대신 아이들을 마음으로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마음속에서, 묘지가 생긴다.
“친구가 죽었다. 사고였다. 문자가 왔다.” 전국 중고생들의 학급문집 글을 모은 <나도 생각 있음>에 실린 서울 배재고 김정희군의 <절벽으로 매달린 잎사귀>의 도입부다. 이 책은 어른들이 보고 싶어 할 만한(따돌림 같은 고통은 딛고 일어서고, 희망은 기운차게 표현하는) 글이 많은 편인데 이 글은 그렇지 않다. 어쨌든, 박병철이라는 그 친구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화자는 그런 친구의 말이 낯설다. 그런데 2학기가 되어, 병철이는 세 번째 아버지와 살게 되었다. 함께 자전거를 타던 병철이가 “오늘은 집에 가기 싫은데”라며 화자의 집에서 놀자고 했고, 마침 엄마와 아빠가 장기 출장을 가 며칠간 화자의 집 옷장에서 살게 된다. 학교도 가지 않고.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집에 돌아왔고, 병철이를 발견했고, 그 집에 연락했다. 병철이는 집에 돌아갔고, 이제는 난간을 잡지 않고선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게 되었다. 3학년 때 병철이는 전학을 갔고, 고등학교 1학년의 나이에 죽었다. “나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의 웃음이 아직도 기억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정희군은 놀라울 정도로 형용사를 쓰지 않고도 감정을 잘 전달하는 글솜씨를 지녔다. 이 글을 읽으며 김정희군의 마음속에 있을 묘지를 떠올렸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마음속에서 죽여 흙으로 덮지도 않는 묘지를 만들었던 모토미야 안과 달리 친구를 위해 흙을 덮고 이름을 적고 글을 써 기린 마음속 묘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