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도 울고 가겠다. 다큐(<다이빙벨>)는 막아도 서스펜스는 포기 못하는 건가. 안 그래도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한데 들킬 듯 말 듯 손에 땀이 쥐어지는 게… 어우어. 미안하지만 어지간한 장르영화보다 더 재미지다. 그동안 청와대 안팎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 사고의 맥락이 이렇게 설명되는구나.
정치 엘리트들이 엘리트답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출되거나 (선출된 이에게) 임명된 이들이라면 일단 접고 봐주는 것이 부족과 왕조와 외침과 독재를 두루 겪어온 5천년 한민족의 심성이다. 오죽하면 묘비에 공직 경력만큼은 빼놓지 않고 올릴까. 이런 소심한 전통이랄까 넘치는 인정이랄까 하는 것이 무참히 깨지는 것을 이 정부 들어 참으로 많이 겪었다. 꼭 엘리트만 정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렇다고 범죄자나 환자에 가까운 분이 나서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 우리는 나라님의 입 역할이나 일인지하만인지상 자리에 어떤 사람이 낙점됐었는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속에서 봐야 했다(정말 서스펜스랑 스릴러는 이렇게 함께 가는구나). 싱글인 데다 자식도 없고 동생들과도 사이 안 좋아 보이는 분이 대통령이 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친인척 비리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문고리 잡고 삐약삐약 세력이 있다는 의혹을 받을 줄이야(어휴. 단속 무서워 글맛 살리기 참 어렵네).
그 중요하다는 ‘국가기밀’ 문서 유출을 진작 보고받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김기춘 비서실장이랑 국록을 받으며 고작 ‘찌라시’ 따위를 그러모았던 청와대의 공직 기강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모든 논란을 잠재우려면 비선으로 불리는 측근들의 옷을 벗기든지 사실은 권력형 전횡이 아니라 권력형 멜로라고 밝히든지, 다른 수가 없어 보인다. 혹시 권력(자)을/를 향한 ‘일방적 치정’이었다 해도 제 기능 못하는 문고리는 교체해야 할 것 이다. 안 그럼 너무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