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긴 하지만 한해 결산을 한다면, 2014년은 기록적으로 비행기를 많이 탄 해로 기억될 것 같다. 11월 마지막주까지 총 32번, 16번의 왕복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다녀왔다. 한해 내내 일하거나 어디에 가 있거나 했다. 비행기표가 필요 없는 여행지들까지 셈에 넣어보면, 4주 연속으로 집에서 잠을 잔 적은 단 한번도 없는 한해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나는 만 1년째 가족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늙어감에 가속이 붙었음을 알았다. 무언가가 사라져가고 있음을 알았고, 일단 나는 즐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밤샘 마감 직후에 공항에 가기가 힘들어졌고, 피곤한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면 중이염 때문에 이명이 심해졌다. 제프 다이어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이제 더이상 여행이 주는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기복을 느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밀려드는 감정의 물결, 바닥을 치는 낙담, 한없이 이어지는 지루함과 불편함의 연속도 이제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지자마자 나는 다시 혼자 있고 싶어졌다.” 그러다 오사카 뉴 한큐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완연한 가을 날씨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백인 중년 여자가 선풍기를 들고 온 일본인 매니저에게 첫마디로 “It’s disgusting!”(역겨워!)이라며 방이 덥다고 짜증을 내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다가, 정말로 여행을 위해 물불가리지 않던 한 시절이 끝남을 알았다. 낯선 기분.
인간은 살면서 자기 자신을 몇번 ‘새로’ 발견할(혹은 발명할) 기회를 갖게 된다. 대체로 사랑에 빠질 때, 직접 돈을 벌어 목돈을 쓸 일이 생길 때, 아이를 키울 때. 그리고 다들 두려워하는 그때, 바로 늙어갈 때다. 50대 중반에 장 아메리는 <늙어감에 대하여>를 쓰며 이렇게 말했다. “흔히 ‘인생의 가을’이라고 말한다. 가을? 가을에는 겨울이 뒤따르며, 다시 겨울에는 봄이 그리고 여름이 따라온다. 그러나 노인이 맞이하는 인생의 가을은 마지막 가을이다.” 그러니 나이듦은 ‘새로’ 무언가를 할 기회를 더이상 갖지 못한다는 뜻, 또한 내면이 폐허로 바뀌어간다는 뜻이다. 제프 다이어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에서 ‘폐허’와 ‘구역’이라는 개념을 각각 상태와 지향의 개념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보시라. 하지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사람들은 응당 제프 다이어와 같은 증상에 시달리느라 좀처럼 책장을 넘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신경쇠약을 겪고 있었고, 사실상 조각조각 나고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흩어지고 파편이 되었다.” 집중해서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즐기고 되뇌며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던 체력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이 책이 재밌다는 내 말을 듣고 산 친구들 중에 아직 읽기 시작했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책의 잘못이 아니다. 친구들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나이듦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