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새 아이 친구 세명이 호주와 덴마크 등지로 떠났다. 세월호 이후 이민 상담이 늘었다는 보도를 본 일은 있는데, 저마다 준비 기간이 끝나가고 있나. 이민은 긴 여행이 아니다. ‘결단’이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그건, 스스로 뿌리를 뽑는 행위이다. 곤혹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식이다. 모쪼록 아프되 뿌리박고 흔들리되 피어나길.
아이를 키우며 갖가지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하는 부모를 많이 만난다. 그에 맞춰 모든 ‘준비’를 한다. 공부하는 습관을 잡아줘야 한다며 초등 저학년을 늦은 시간까지 책상에 잡아두기도 하고 소풍 가서 혼자 밥 먹었다는 소식에 몇날 며칠 심란해하며 주변을 살피기도 한다. 기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단순하고도 멍청해서 그 모든 부모의 조바심이 별무소용이거나 짐작만큼 상처받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그 부모들이 유별나고 특이한 것도 아니다. 지금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며 벌이는 모든 ‘전쟁’은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다. 때론 삿된 욕망이나 터무니없는 공포일지라도 부모들의 행위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보험 설계’의 성격이 짙다.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는 아무것도 ‘예측’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모든 게 헛짓일 수 있다. 올해 들어갈 아이의 어린이집 비용조차 가늠이 안 되고, 군사 주권 갖다바치며 웃돈처럼 얹어주는 미국산 전투기 한대 값의 5분의 1도 안 되는 돈을 놓고 교육이네 복지네 이전투구하는 꼴을 지켜봐야 한다. 이 땅에서 이미 부박한데 다른 땅에서인들 뭐가 그리 다를까. 우리가 하는 일상의 모든 노력은 휘황하게 올라간 고층건물 틈에서 낡고 안온했던 골목길을 기억하는 목격자의 증언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것이 이 ‘화려한 폐허’를 떠나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