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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어머니, 내가 모르는 어머니
정지혜 사진 최성열 2014-11-25

<몽테뉴와 함께 춤을> 이은지 감독, 김난주 번역가

김난주 번역가, 이은지 감독(왼쪽부터)

우리는 저마다 인생이라는 긴 방랑의 길 위에 서 있는 것일까. <몽테뉴와 함께 춤을>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영화를 만들고자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이은지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를 카메라에 담으며 비로소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불문학자이자 번역가인 감독의 어머니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의 <에세>를 번역해오고 있다. 하지만 번역을 하면 할수록 번역가로서의 한계를 느낀 그녀는 마침내 몽테뉴의 자취가 깃든 프랑스로 떠난다. 이 여정에 동행하게 된 감독은 그곳에서 어머니가 직면한 삶의 조바심, 불안의 실체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느끼는 삶의 두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20여년간 치열하게 일본 문학을 번역해온 번역가 김난주가 이은지 감독과 만났다. 그녀 역시 두딸을 둔 엄마이기에 이 영화를 더 깊은 애정으로 바라봤다. 밤이 깊도록 맥주잔을 부딪치며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결국 삶의 조바심 너머에서 찾길 기대하는 삶의 평온함에 관한 이야기로 번져갔다.

김난주_장편 데뷔를 축하한다.

이은지_감사하다.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일단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만들고 나니 관객과 만나고 싶고 관객과 만나게 되니 관객이 영화를 좋아해줬으면 하게 된다. 계속 욕망이 커진다. 관객을 실제로 만나야 영화가 완벽하게 완성될 것 같다.

김난주_영화를 서너번 봤다. 보면서 처음에는 화가 났고 나중에는 슬펐다. 나는 내 두딸이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최대한 의식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내 일과 자식을 분리해왔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딸이 엄마와 엄마의 일에 관해 얘기를 하더라. 아마도 나의 화에는 부러움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이은지_나 역시 이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는 어머니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머니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러던 차에 어머니가 먼저 같이 프랑스로 가서 본인이 하는 몽테뉴 번역 작업을 카메라에 담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어머니는 자신을 포함한 번역가들이 번역을 하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한계, 간극을 어떻게 채워가는지에 대한 학술적인 다큐멘터리를 생각하신 듯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전혀 모르는 몽테뉴보다는 어머니에 대해서 찍어보자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촬영을 시작했다.

김난주_극중, 어머니가 “어머니에게 번역은 업(業)이다”라는 영화 기획서의 문장을 보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업’은 대체로 내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짊어지는 일이라는 의미가 강하지 않나. 어머니가 (번역가로서의) 자기 존재를 딸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는 장면 같아 되게 슬프더라. 어머니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 아벨라르, 몽테뉴로 이어지는 서구적 주체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하신 분이다. 항상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게 뭔지에 대해 명료하고 솔직하게 표현해오셨다. 자신에 대해 고뇌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나를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라 내 마음속에 뭐가 들끓고 있는지 잘 감지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태어났지 누군가를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고 하는 걸 보니까 내가 눈물이…. (웃음)

이은지_직업이라는 의미로, 어머니가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으로 업이라는 말을 썼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 어머니께서 그 부분을 지적하셨을 때 내가 나의 의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도 크다. 이번 작업을 통해 자신은 원래 시를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 어머니, 직업인으로서의 어머니, 몽테뉴를 번역하는 어머니를 보게 되면서 어쩌면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조바심 때문에 고민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다면 조바심이라는 건 삶의 어떤 조건이 아닐까. 노력하면서 그 조바심을 조금씩 해소해나가는 게 아닐까. 사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나에게는 계속 뭔가가 돼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과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조바심이 반복됐다. 부모님 모두 각자의 작업을 하는 분들인데(이은지 감독의 아버지는 소설가 이인성이다.-편집자)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이기도 했다.

김난주_매 순간 조바심과 부딪히고 그걸 또 밀고 나가야 하는 게 인생 아니겠나. 나는 일에 대한 조바심은 없다.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되고 스스로도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안다. 하지만 사는 건 아무리 내가 이겨내려고 애쓰고, 노력해봐도 이렇다 할 답이 없더라. 그러면서도 항상 답을 갈구하는 갈급함이 있다. 번역 작업도 그렇다. 100% 완벽한 번역을 추구하고 싶고, 추구하려고 애쓰지만 번역에 있어 100%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어머니도 그러시지 않나. 번역한 걸 볼 때마다 계속 고치고 싶다고. 남들은 잘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내 부족이 보인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타협을 했고, 어느 부분이 미진했는지 내가 가장 잘 안다. 결국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항상 100%는 없는데 거기에 다가가려고 한다. 이제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려고 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평온해지지 않을까.

이은지_고백하자면 한때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보다 더 잘 쓸 수 없을 것 같더라. 부모님이 잘 모르는 분야의 일을 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영화는 부모님이 잘 모르는 분야가 아니었다. (웃음) 똑같은 영화를 봐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을 수 있다는 데서 영화가 재밌었다. 해석의 여지가 이토록 많은 매체라면 해보고 싶더라.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갔다. 멋도 모르고 덤비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난주_원래 무지가 용기와 통하는 법이다. (웃음) 그나저나 영화에 나오는 프랑스에 소개되는 한국 작가들을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 제안은 어떻게 됐나.

이은지_아버지의 책을 프랑스에 번역 출간하는 출판사로부터 아버지에 관한 영상을 제작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출판사 웹상에 올라갈 20여분의 영상인데 이걸 발전시켜보려고 한다. <몽테뉴와 함께 춤을>을 통해 내가 영화를 계속할 수 있겠구나, 영화를 계속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굳혔다. 어떤 길을 가든 영상 작업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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