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이 얘기는 ‘오프 더 레코드’란 뜻 속뜻 이 얘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표시하는 강조어법
주석 대화 도중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춘다. “이건 비밀인데….” 비밀이라고 하면서 그는 왜 말하는 걸까? 비밀은 알려지지 않아야 비밀이 아닌가? 일시에 열린 귀들을 앞에 두고 그는 열어선 안 되는 봉인을 바야흐로 풀어내려는 참이다.
비밀의 본성을 말해주는 이야기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만 한 게 없다. 아는 자는 발설해야 하고(이발사는 말하지 않으면 불치병에 걸린다), 비밀은 누설되어야 하고(이발사가 말하지 않으면 대밭이 대신 말할 것이다), 들을 자는 들어야 한다(결국 모든 이들이 비밀을 알게 된다). 어째 성경 말씀 같지 않은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호산나를 연호하며 그분을 환영했다. 바리새인들이 시끄럽다고, 예수더러 말려달라고 하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누가복음 19장 40절) 예수는 여러 곳에서 비유를 들어서 설교를 한 후에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누가복음 8장 8절) 비밀이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으면 대나무건 돌이건 말해야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반드시 누설되어야 하는 것. 혹은 그게 비밀이라는 것을 눈치챈 자들(귀 있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들리게 되어 있는 것. 비밀은 만인에게 알려지는, 알려질 수 있는, 알려져야 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비밀이 사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비밀은 없다. 그런 비밀은 완벽하게 잊히므로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비밀을 비밀로 대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발설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비밀은 알려져야만 비밀이다. 이것이 구미호 이야기의 역설이다. 구미호가 옆 사람들의 간을 파먹고 나서 피 묻은 혀를 날름거리며 사내를 협박한다. 살려줄테니 천일 동안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내는 자신을 따라온 예쁜 색시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 약속한 기한인 천일을 하루 앞두고 사내는 그 무서운 비밀을 아내(실은 구미호)에게 발설하고야 만다.
사내가 산통을 깬 걸까? 사내가 제3자에게 얘기를 했다면 누설이 맞다. 하지만 사내는 구미호에게 구미호 얘기를 했으니 사실은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다. 구미호가 이미 그 얘기를 알고 있었으니까. 천일은 영원의 다른 표현이다. 구미호는 그 얘기가 영원히 알려지지 않기를, 더이상 비밀이 되지 않기를 바랐던 거다. 그런데 사내가 자신에게 비밀을 되돌려줌으로써 그것을 비밀로 만들어버렸다. 사내는 비밀을 누설해서 관계를 망친 게 아니라, 비밀을 비밀로 만들어서 관계를 망친 것이다. 아, 이미 그것이 비밀임을 알았는데, 어떻게 말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말인가?
용례 “이건 비밀인데…”란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운다. 임금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당나귀 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밀은 그 비밀을 듣는 이를 비밀의 주인공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