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2주기 기일에 아는 선배의 부고를 들었다. 밤새 꿈과 의식 사이의 림보에서 헤매는 기분으로 뒤척이다 해가 뜨는 걸 보고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펴들었고, 가여움과 귀여움을 누구에게랄 것 없이 느꼈다. 위로를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먼저 말해두자면 그렇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로, 연재 당시의 제목은 <소라나나나기>였다. 암호처럼 들리지만 돈이 가득한 금고문을 여는 일과는 관계없을 것만 같은 저 제목은, 소설의 세 주인공 이름으로(이름이 이사인 회사 이사가 등장하고, 앞의 한자 두 글자가 같은 金인 김금주라는 이름도 있다- 황정은은 음악적이고도 괴팍한 작명가다), 책엔 그 주인공들 이름으로 이루어진 장들이 순서대로 펼쳐진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다. 소라는 엄마(결국 요양원에 보낸)와 아빠(일하던 공장에서 비참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나의 임신을 전한다. 나나는 아이 아빠인 남자의 집에 인사를 갔다가 그의 아버지가 쓰는 요강을 발견하고 그와의 미래에 대해 근심을 시작한다. 나기는… 복잡하다. 소라, 나나와 나기는 한개짜리 집을 두개로 만든 반지하집에서 만나게 된다. 한식구 같은 이웃. 이들이 남매(혹은 불행을 나눠가진 세 쌍둥이) 같아진 것은 소라와 나나의 엄마 대신 나기의 어머니가 자매를 챙기면서부터다. 엄마가 며칠째 들어오지 않자 자매는 굳은 쉰 떡을 전기밥솥에 넣고 무르게 해서 설탕을 찍어 우물거리고 먹는다. 쉰 냄새를 이상하게 생각한 나기의 어머니가 와서는 떡을 먹어보는데, 그때 소녀가 느끼는 것은 수치심이다. 몰라서 쉰 떡을 먹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나기의 어머니는 “끝까지 떡을 뱉지 않고 삼킨 뒤, 이 떡의 맛이 좋으니 자기네 밥이랑 바꿔 먹자며 나나와 나를 벽 건너편으로 데려갔다”.
그런 이야기다. 계속해보겠다는 이야기. 멈추고 고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들을 타고 넘어 계속하는 이야기. 두 번째 나나의 이야기에서, 나나가 이야기 중간중간에 (숨을 고르듯) 잠시 멈추고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할 때마다, 그저 잠자코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한 일인가 생각했다. 나나가 임신한 자신을 대하는 소라의 태도에 화를 내며 친절하게 굴지 말라고 할 때, 이런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생각하기도 했다. 소설을 다 읽고, 이 셋을 만나면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혼쭐나겠구나, 쓰게 웃었다. 동정하지 마. 위로하지 마. 친절할 필요도 없어.
부적처럼 적어 베개에 넣고 꿰매고 싶은 문장이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계속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때로는 직업이, 사랑이, 목숨이,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계속’을 그만둔다. 그리고 언젠가는 멈춰 선다. 영원히. 그러니 제목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계속해주세요. 제발, 계속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