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이 다 산 나이도 아닌데 여기 아파 저기 아파 올봄부터 엄살깨나 부려왔던 나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특별한 병명이 없는데 왜 이렇게 통증을 호소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신들이 무능해서 모르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억울한 표정으로 날 흘겨보고는 했다.
아마 잠을 못 자서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매일매일이 피곤한데 왜 못 자는 걸까요? 이 아줌마야, 당신의 이부자리 잠자리를 왜 내게 와서 펼치고 그러시나… 라고 몹쓸 대거리를 한 의사 선생님은 안 계셨지만 확실히 불면의 원인을 잡아내고 처방전을 내준 의사 선생님 또한 아니 계셨다.
요가를 해. 스쿼시를 해. 발레를 해. 수영을 해. 그런데 말이죠, 요가는 지루해요. 스쿼시는 힘들고요. 발레는 안 어울리던걸요. 수영은 볼륨이 없어가지고요. 운동을 권하는 이들에게 갖가지 핑계를 대던 어느 날 동네에 새로 간판 하나가 걸리는 걸 보았다. 에이스 탁구장. 어라, 탁구? 그래, 탁구로구나!
문득 거실 서랍장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탁구채 하나가 떠올랐다. 모두가 말로만 운동을 권할 때 가죽 케이스까지 씌운 탁구채 하나를 선물로 주었던 선배가 있었던 것이다. 탁구채와 탁구공을 양손에 하나씩 나눠 쥐고는 의기양양 탁구장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요, 저 탁구 배우러 왔는데요.
순간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중년의 아저씨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한여름 땡볕의 도로 위를 질주하다 온 마라토너들처럼 그들의 양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머리카락이 이마에 덩어리져 들러붙을 만큼 땀으로 흥건한 채였다. 관장은 탁구가 얼마나 좋은 스포츠인지 일장 연설에 들어갔다. 강습비와 강습시간만 알려줘도 바로 등록할 작정이었건만 사설이 길어지면서 나는 어떤 망설임 속에 놓이고 말았다. 강습은 저기 저 정수리에 머리털 없는 분한테 받으면 됩니다. 탁신이에요, 탁구에 거의 미쳤다고 할 수 있죠. 하루에 10시간은 기본이라니까요. 잠도 못 잔대요,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서 탁구공 소리가 난다나.
가장 실력 있는 코치를 붙여주려는 관장 나름의 특혜란 걸 모르지 않았으나 나는 뒤로 주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불면증을 고쳐볼까 해서 찾아간 탁구장에서 불면증을 앓고 있는 한 사내를 보고 있자니 왠지 묶여서는 안 될 한 세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탁구, 하고 두 글자를 쳤다. <현정화의 퍼펙트 탁구 교본>이라는 책이 가장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책을 주문하고 나니 뭔가 든든한 코치한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가 들었다. 바느질도 뜨개질도 비즈 공예도 책으로 배우려다 포기했으면서 여전히 책이면 다라는 착각, 아무래도 이게 내 병이려나. 이참에 궁금한 점. 탁구계의 고수들은 왜 그렇게 하나같이 팔다리가 가느다랄까. 에티오피아의 부시맨들처럼 앙상한 팔다리를 갖고 싶어 탁구를 시작한 건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