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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김득구역의 유오성
2002-03-06

한달간 `뜀박질` 넉달간 `주먹질`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링으로 올라서는 샷을 찍는 2시간여 동안, 유오성(34)씨는 단 한차례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김득구의 등장을 환호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위에서부터 훑어 내려가며 찍는 샷으로 유씨의 얼굴은 카메라에 자세히 잡히지도 않았으나, 그는 촬영을 멈추는 잠깐 잠깐 조차도 자신이 김득구임을 잊지 않았다.“그가 참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이라곤 관장과 코치, 딱 2명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외로운 상황 속에서 14라운드까지 싸운 것만으로도 그가 존경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씨는 김득구역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다. “돌아가신 분이라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고, 행복한 삶을 산 분도 아니었죠. 그럼에도 이 역을 하기로 한 건, 그의 삶이 개인의 삶이라기 보다 인간의 보편적인 삶이고, 용기를 가진 삶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 역을 맡았습니다.”그는 마음을 정하고 난 뒤 곧바로 권투선수로서의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시나리오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개인 트레이너와 7월 한달 동안 달리기만 했고 이후 넉달 동안은 하루 5시간씩 복싱 자세를 연마했다. 지금까지 국내의 12경기를 촬영하는 동안 무리한 스트레칭으로 손목과 발목의 인대가 늘어나거나, 경기장면에서 정통으로 코를 얻어 맞아 상처를 입는 등 부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가장 고민한 건 김득구의 마지막 경기에서 자신이 보여줄 연기였다. “김득구는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관객들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열심히 살아보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할 것 같아요. 그래야 제가 다짐한 약속도 어느 정도는 지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유씨는 자신만만하고 남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연기를 해서 먹고 사는 놈이지, 이미지를 팔고 사는 놈은 아니다”, “연기를 하면서 완전히 그 인물에 몰입되는 감성적인 배우라기 보다는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배우”라고 당당히 말한다. 배고픈 연극판에서 연기생활을 시작해 오디션을 통해 하나씩 단계를 밟으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리라. “<챔피언>이 끝나면 나 자신을 뒤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연극을 한편 할 생각”이라고 유씨는 밝혔다.로스앤젤레스/신복례 기자▶ `권투`가 아닌 `꿈`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