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아이의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 속뜻 이혼하겠다는 부모의 통보
주석 이 질문이야말로 아이에게 닥친 최초의 시련이자 시험이다. 이것은 성인이 될 때까지 무수히 치르게 될 수학능력시험의 전조이며, 아무리 풀어도 또 풀어야 하는 무한루프다. 사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연히 엄마가 좋다. 나를 품고 기르고 먹이고 입히는 이가 엄마니까. 구글 번역기로 ‘엄마’를 검색하면 이런 소리가 난다. 마(영어, 아이슬란드어, 힌디어, 스와힐리어), 마마(독일어, 러시아, 네덜란드어 등등), 머마(그리스어), 모므(라틴어), 모음(스웨덴어), 모뮈(아랍어), 마르(카탈로니아어), 맘마(타밀어), 마마(일본어), 안야(헝가리어), 마마(중국어), 매(타이어)… 어디나 비슷하다. 아기가 입을 떼고 발음하는 최초의 소리, 아이의 발성기관이 낼 수 있는 맨 처음 소리는 어디나 비슷하다. 처음 아기의 말을 듣고 그 말이 자신을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엄마이기 때문에, 저 소리는 엄마를 뜻하는 소리가 되었다.
아빠는 저 최초의 비음(‘ㅁ’)이 익숙해진 다음에야 온다. ‘파파’거나 ‘대디’와 같은 파열음(‘ㅍ, ㄷ’)으로 온다. 이것도 세계 공통이다. 비음은 애교가 넘치는 소리다. 코맹맹이 소리가 애인의 전유물인 것은 이 때문이다. 파열음은 터져나오는 소리다. 아빠, 나빠. 오빠, 나만 봐. 저 안타까운 비명은 늘 남자를 대상으로 터져나온다. 그러니 처음 질문에 대해서 아기가 최초로 낼 수 있는 답안도 당연히 엄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다면, 전세계 아이들이 외칠 것이다. 엄마!
철이 들고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저 질문은 늘 아빠가 한다. 단 지갑을 손에 들고. 사실대로 말하면 국물도 없다. 아이는 최초로 세상의 질서를, 아이러니가 무엇인지를, 참과 거짓의 경계를 깨치게 된다. 남자아이라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죽어갔다는 이승복 어린이의 심정이 된다. 엄마를 외치며 내쳐질 것인가? 아빠와 타협하여 용돈을 보존할 것인가? 여자아이라면 신파극의 주인공이 된다. 엄마가 비통하게 묻겠지. 아빠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란 말이냐? 그러고 보니 김중배란 이름 속에도 아빠처럼, 비음 대신 파열음이 들어 있구나.
나이를 더 먹으면 저 고민은 희미해져서 중국집 메뉴판 앞에서만 가끔 떠오를 뿐이다. 자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아, 그러나 중국집에선 짬짜면이라도 있지. 아빠와 엄마는 반씩 섞을 수도 없다. 우리의 모든 실존적 고민의 기원에는 저 질문이 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이는 본능적으로 이 질문의 무서움을 아는 것이다. 이 질문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다음에나 나올 질문이라는 것을, 자신이 재산분할청구소송의 그 재산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용례 “둘 다 좋아”는 적절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그러면 바로 두 번째 질문이 들어온다. “엄마와 아빠가 물에 빠졌어. 시간이 없어서 한명밖에 못 구해. 그럼 누굴 먼저 구할래?” 어쨌든 저 질문 앞에 서면 선택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사지선다나 오지선다가 아니다. 양자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