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력한 지배는 사람들에게 여행과 독서를 금지하거나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정희진처럼 읽기>의 프롤로그에 쓰인 말이다. 이제 현대사회는 여행을 돈만 있으면 구매 가능한 물성을 지닌 것으로 바꾸었고, 독서에 대해서라면… 우습게도 금지할 필요 없이 다른 놀이기구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여성학자 정희진은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도통 한권 떼기도 어려울 책들을 줄줄이 소개한다. 그나마 소설이 많이 소개된 1장과 5장이 나은가 싶기도 하지만 천만의 말씀. 영화 <밀양>의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 대한 글에서는 이런 문장이 있다. “영화의 내용은 약간 다른데 제목처럼(secret sunshine) 다소 밝다.” 영화 <밀양>이 밝다니, 그럼 <벌레 이야기>를 읽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외치고 싶은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런 불평은 책에 대한 정희진의 글(마치 말을 듣는 것처럼 읽히는)을 읽다 보면 천천히 사그라진다. 피터 게이가 쓴 프로이트 평전 <프로이트>에 대한 글에서는 왜 이 책이 이렇게 ‘쉽게’ 읽히는가의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공부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인식자가 자기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사회와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부제대로 여기 실린 책들은 정희진의 몸이 한권의 책을 느릿하게, 때로 아파하면서 통과한 흔적이다. 책에 대한 에세이라지만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이해 못할 글이 없다. 나아가 글을 읽고 나면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다. 아마도 책에 대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덕목이 아닐까.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기는 마쳤지만, 책읽기는 이제 시작이다. 책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는 언니의 전화번호를 딴 것 같은, 신나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