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이후’가 할리우드 활극의 한 갈래를 이뤄가는 와중인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늘 그랬듯이” ‘재앙 앞에서 인류를 구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나왔다. 나사(NASA) 소속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헤이)는 지구에 몰아친 식량난으로 옥수수나 키우며 살고 있다. 거센 황사가 몰아친 어느 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딸과 함께 도착한 곳은 인류가 이주할 행성을 찾는 나사의 비밀본부. 쿠퍼는 만류하는 딸을 뒤로한 채 우주선에 탑승한다.
<인터스텔라>는 <아마겟돈>이 아니다. 영화는 ‘사이’(inter)에 주목한다. 성간(星間•Interstellar)여행을 감행하는 <인터스텔라>의 인물들은 무엇과의 접점(interface)을 찾느라 힘겹다. <인셉션>이 뇌 속 상호작용(interaction)에 관심을 뒀다면 <인터스텔라>의 항로는 상대성(relativity)에 지배받는 인물 사이의 관계(relation)에 맞춰진다. 우주 공간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 7년쯤 된다는 상대성에 의해, 대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지구의 가족들은 20여년의 세월을 보내고, 그 차이만큼이나 팽팽하게 지구쪽 구심력과 반대쪽 원심력 사이의 끈이 당겨지면서 인물들의 관계를 절박하게 만든다. 관객은 그 사이에 있다. 4차원, 5차원 공간을 넘나들며 인간의 차원과 접점을 찾을 때 쿠퍼도 그 사이에 있다.
인공지능 로봇의 ‘솔직함 레벨’까지 원하는 대로 설정되는 등 영화 속 인류의 기계문명은 완벽하게 통제 가능하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할리우드의 숱한 재난영화들에 비교하면 놀란 감독의 상당한 보수 성향이 겉에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이은 매튜 매커너헤이의 연기가 ‘간절함의 화신’이 된 듯 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