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의 바디무비’를 읽고 마음이 괴롭다. “자신도 모르게 자주 쓰는 문구가 있다.… ‘이를테면’, ‘다시 말해서’, ‘그게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등…. 그렇게 말하게 된 데는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씨네21> 975호)
나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많다. 위의 모든 문구에다가 ‘내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내 말 알겠지?’, ‘왜 사니’, ‘미친 거 아냐’, ‘오프 더 레코드, 아니 오프 더 메모리’… 이 지면에 다 옮겨 적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이 말이 내 일상과 인간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부끄러웠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 안 적은 것도 있다. 실은(아, 이 말도 많이 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발길질을 해대며 자학했다. 게다가 나는 강의로 먹고산다. 강의 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옆길로 새면서 “오늘의 주제는 아니지만”과 “제 말 전달됐죠?”다. 세상에 이런 비호감이 없다.
나는 왜 이럴까. 정확한 소통의 욕망, 자기과시, 비사회적인 척…. 내 문제 역시 목록감이었다. 구제 불능 경향은 아예 제외하고, 심각한 것은 나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였다. 착한 여자와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반대말이다. 콤플렉스는 말 그대로 복잡한 혹은 복합적인 심리상태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착하지 않은 여성이 착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과 그 압력을 초과 달성해서 예쁨 받으려는 욕망. ‘착한 여자’는 남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므로 대개 실패하는 프로젝트다. 우울증, 불쌍한 이중적 성격이 형성된다.
내 콤플렉스(?)의 절정은 “내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참아야 하는데(착한 여자) 말해야 직성이 풀리니(착한 여자 콤플렉스), 듣는 사람은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나는 너의 약점과 비밀, 세상 평판을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준다. 스스로 멘토의 경지에 빠져 상대를 통제하려 드는 말이다.
원래는 상대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 지금은 상대방 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좋은 내용이든 그렇지 않든 상대방이 알아야 할까? 판단이 안 서서 등등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나온 말, 즉 나름 노력한 결과다. 정말 내 진심은 그런 것이었다. 배려하려고 그런 거다. 그런데 말이 요상하게 엉킨 경우다. 이러한 배려와 걱정도 자기중심적일 때는 무례다. 배려 자체가 타인의 입장에 서는 것인데 이 말은 상대에게 은근한 위협과 두려움을 조장한다. 말하는 사람은 교양 없어 보인다.
며칠 전 한 친구가 이 표현으로 시작되는 말을 내게 했다. 나쁜 내용이 아니었는데도 묘하게 불쾌했다. 막상 듣고 보니, 남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처지가 된 느낌이었다. 다시는 쓰지 말아야지. 근데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이 지면에 이런 이야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