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만 열면 망하는 사람이다. 다 좋은데 그놈의 입이 방정이라고 어릴 적부터 심심찮게 지적을 받아오곤 했다. 음담패설이나 욕설은 난무하게 뿌릴 줄 알았으나 뭐, 그쯤이야 애교로 봐줄 수가 있다 했고 다행히 거짓말이나 뒷담화에 볼이 빨개지는 아이였으니 뭐, 그쯤이야 들켜가며 사는 게 사람답다 넘어가줄 수 있다 했다만 문제는 말의 속도였다. 그러니까 입에 모터를 문 아이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식구 여섯 가운데 유일하게 말이 빨랐다. 당연히 말과 말이 뒤엉켜 말을 더듬기 일쑤였다. 버스 전면에 붙어 있는 광고를 보고 엄마 손에 이끌려 화술학원 문턱까지 다다른 적이 몇번인지 모른다. 그때마다 든 마음은 혹여 내가 불구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어떤 슬픔이었다. 입이 절로 닫혔다. 말수를 잃어갔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도 같다.
그러나 사회는 날 입 다문 아이로 살아가도록 가만 놔두지 않았다. 말을 해야 직장을 얻을 수 있었고 말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었으며 말을 해야 사람도 곁에 둘 수 있었다. 그렇게 입 꾹 다물고 가만 앉았으면 누가 알아서 척척 인터뷰에 응할 것 같아? 너란 사람의 자의식 따위는 버리라고! 직장에서 만난 사장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잘한다, 잘한다, 등을 두드리면 두드러기라도 나는 듯 못났어, 못났어, 압정 같은 질책을 꽂아대기에 바빴다. 그게 연봉을 덜 주기 위한 교묘한 꼼수라는 것을 훗날에야 알았지만 그 뾰족뾰족한 따가움이 일단 아프기도 했으니까 나는 통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고 쉴 새 없이 말수를 늘려가야 했다.
그사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빨라졌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우리 사회 전역을 잠식하면서 빠른 것에는 환호를 하되 느린 것에는 화를 내는 시대가 들이닥쳤다. 속도전에 익숙해져갈수록 전세계 어디든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전세계 어디에서도 살 수 없겠구나 하는 체념으로 바뀌어 갔다. 다행히 콩 볶는 소리처럼 빠른 내 말의 속도도 시대와 보폭을 함께하는 개성인 양 받아주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오히려 나는 지금에 와 느리게 말하는 법을 배우느라 밤마다 소리내어 서너 페이지씩 책읽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왜? 어느 순간 빠른 만큼 빨리 늙어간다는 자각을 동시에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와이 문화를 한국 전역에 널리 알리려는 예술인을 만났다. 처음 하와이에 갔을 때 세상이 이렇게 느려도 되나 오히려 덜컥 겁까지 났는데요, 천혜의 자연을 느릿느릿 즐기는 것으로도 하와이 사람들은 평생이 바쁘더라고요. 참, 하와이의 독특한 분위기가 하나 있는데 훌라춤을 추기 전에 이런 말들을 나눈대요. Ala(관심)! Lokah(협동)! Oluolu(조화)! Ha‘aha‘a(겸손)! Ahonui(인내)!
관심과 협동과 조화와 겸손과 인내를 서로 인사처럼 나누는 사회. 우리에겐 어떤 집단에 있어 어르신의 영정사진이 놓이곤 하는 그 자리에 가훈이나 급훈이나 사훈처럼 걸려 있던 화석과 같은 말이 아닌가. 네가 가라 하와이. 영화 <친구> 속 그 대사가 친구에 대한 진정한 배려였음을 이렇게 또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