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기습적으로 발의됐다는 기사를 읽고 있었다. 법정 근로시간을 사실상 60시간까지 늘리고, 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임금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기사를 읽어내려가고 있는 그때, 갑자기 창문 밖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주택가가 진동했다. 알고 보니 한국이 축구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었다.
당혹. 이렇듯 선명하다 못해 기시감에 찌든 낡은 전형의 순간들과 조우할 때마다 마음이 어지럽다. 혹자는 노동으로 지치고 힘든 삶에 스포츠와 금메달이 한 줄기 위로 같은 거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빚더미와 교환하는 위로란 사실 자기기만이지 않은가.
경제효과 20조원. 또 한번의 설레발로 시작된 인천아시안게임은 운영 자체도 엉망진창이었지만, 1조원이라는 빚만 덩그러니 떠안게 된 희대의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시민들의 혈세가 이 빚을 위해 종이돈처럼 허공 속에서 불태워져야 한다. 참 비싼 환호성이고, 참 어이없는 위로다. 그것도 모자라 이날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말하자면, ‘일은 더 하게 되고, 돈은 덜 받고, 세금은 허망하게 날리는’ 이날의 삼진아웃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시민들 모습은 그저 허무한 부조리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유베날리스의 ‘빵과 서커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로마 시민들이 소작농들이 붕괴되고 있는 와중에도 정치적 사유를 포기하는 대신, 폭군이 제공하는 밀가루와 검투사 경기가 벌어지는 원형경기장의 구경거리에 자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값싼 빵과 서커스만 있다면,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정치’에 대한 사유를 기꺼이 포기하는 순응주의자들의 시대.
그렇게 권력은 시민들의 순응을 먹고 자란다. 서민들에게 담뱃세, 주민세 등으로 세수를 뜯어가는 대신 보란 듯이 부자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줘도 해맑게 조용하기 때문이다. 잊지 않겠다던 맹세들이 무색하게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잊어가고 있는 세월호 앞에서 자신감을 되찾은 극우들이 백색테러집단 서북청년단을 코스프레한 채 갖은 행패를 부려도 천진하게 조용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노동시간도 모자라 일을 더 시키겠다는 충격의 개정안이 발표돼도, 축구공을 향해 환호성을 지르기 때문이다.
길들여진다는 건 그렇게 망각하고 상실하는 일이다. 야당은 야성을 잃어버린 가축이 된지 오래됐고, 까칠함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진보진영은 그 거주지마저 희미해졌다. 한국의 시민들은 지금, 성공이라는 실재하지도 않는 환각의 등대를 향해 그냥저냥 순응한 채 기껏 값싼 빵과 서커스에 자족하며 항해하는 배 위에 있는 건 아닐까? 맙소사, 우린 여전히 세월호 위에 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