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지식인 사회를 시끄럽게 뒤흔들었던 ‘지적 사기’ 논쟁은 앨런 소칼이라는 미국 물리학자가 벌인 장난스러운 실험에서 시작되었다. 소칼은 미국의 문화연구 저널 <소셜 텍스트>에 ‘경계의 침범: 양자중력의 변형 해석학을 위하여’라는 논문을 써보냈다. 제목의 뜻은 몰라도 된다. 논문을 쓴 소칼 자신도 모르니까. 그것은 난해한 전문용어로 그럴듯하게 포장했을 뿐 억지와 궤변으로 가득 찬 낚시글이었다. 소칼은 현대 철학의 특정한 조류가 부질없는 말놀이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 논문을 썼다. 그리고 <소셜 텍스트>는 소칼의 논문을 특집호로 구성해 게재함으로써 낚시에 걸려들고 말았다. 소칼은 사건의 전말을 폭로하고, 저서 <지적 사기>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목적은 왕이 벌거 벗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난해한 담론과 이로 인한 지적 불성실은 지식인 사회에 해악을 미치고 그렇지 않아도 대중에 만연한 반지성주의를 조장한다.” 정말로 어떤 현대 철학은 학자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현학적인 말장난일 뿐이었나? 과학과 철학, 그리고 과학자와 철학자 사이에서 거의 목숨을 건 전쟁이 벌어졌다. ‘지적 사기’ 논쟁은 많은 철학자들에게 명예를 넘어 간판과 밥그릇이 걸린 문제였다.
그리고 몇년 뒤,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관한 황우석의 논문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황우석은 단숨에 노벨 의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위대한 과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논문에 실린 조작된 사진 몇장에 전세계가 속아 넘어간 덕분이다. 논문의 사진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될 때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의심 없이 믿었다. 철학과 달리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므로. 과학이 치는 사기와 과학자가 치는 사기의 차이가 거기서 드러났다. 물론 황우석 사기극 자체가 그의 논문을 사후 검증한 과학계의 정적들에 의해 부풀려진 사기극이라는 음모설도 있다. 진위를 판정하는 데는 고도의 과학지식이 필요하지만, 단지 ‘과학자가 치는 사기’ 이론을 검증하는 정도라면 과학 지식이 전혀 필요 없다. 기초적인 논리적 감각만 있으면 된다. 황우석이 진실이라면 검증한 과학자들이 거짓이다. 검증한 과학자들이 진실이라면 황우석이 거짓이다. 따라서 여전히 과학자 중 누군가는 사기를 치고 있는 셈이 된다. 철학에서는 이 논리적 기본 원칙을 배중률이라고 부른다.
한편 황우석의 논문을 게재한 저널은 <사이언스>였다. 앨런 소칼은 “저명한 문화연구 저널인 <소셜 텍스트>의 편집자들이 자기네 발등을 도끼로 찍었다”고 조롱했는데, 소칼의 사기 논문을 실은 <소셜 텍스트>는 미국의 문화연구 분야 정도에서나 저명한 저널이다. 황우석의 사기 논문을 실은 <사이언스>는? 전세계 과학계를 통틀어 가장 저명한 저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