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처음으로 안 하던 짓을 했다. 후배와 지인의 남동생에게 소개팅을 주선한 것이다. 애초에 소개팅이란 게 그리 성사율이 높은 시스템이 아니란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양쪽에 전화번호만 전해주고 손을 뗐지만 가끔 궁금하다. 만나긴 했을까. 마음엔 들었을까. 알고 보면 둘 다 괜찮은 사람들인데,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다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인 걸까. 몇주째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어 혼자 차게 식어가던 차에 <썸남썸녀>를 만났다. <은하해방전선>, MBC every1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윤성호 감독 신작 <썸남썸녀>는 TV가 아니라 9월 초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방영 중인 웹 드라마다. 한회 분량은 15분 안팎으로 짧지만 짝을 찾기 위해 지역 유선 프로그램 <썸남썸녀>에 출연하게 된 열한명의 남녀 이야기에는 SBS <짝>의 정수는 물론 그 이상의 사랑스러움이 담겨 있다.
피차 바쁘니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대신 “워크숍 왔다 생각하고 결혼 관련 이슈를 컨펌하기로” 하는 실용주의자 커플 남자 1호(조한철)와 여자 1호(이채은), 여자에게 인기는 없지만 주택청약 만기를 앞두고 “결혼을 하려면 아파트가 있어야 하는데 아파트가 생기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시장에 뛰어든 남자 2호(안재홍)를 비롯해 섬세하게 숨을 불어넣은 캐릭터들은 특히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동시대성으로 힘을 얻는다. 허우대 멀쩡한 바람둥이에게 속아 결혼에 실패한 여주인공은 많지만 “가로수길을 끊어야 돼요, 저는. 여자 꼬이려고 외제차 리스하는 그런 애들!”처럼 눈물 어린 성찰을 하는 여자 3호(최예슬)만큼 웃기면서도 친구의 아는 동생 같아 마음이 짠한 경우는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썸남썸녀>는 그들의 빤한 속내와 지질함을 재기발랄하게 파헤치는 것을 넘어 어딘가 부족하고 괴상한 그들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가 닿는 순간의 설렘도 놓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종교 때문에 성적인 욕망을 억누르고 지내다 다른 사람들과도 트러블을 일으킨 여자 4호(서이안)에게 가장 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때 “사람들 다 4호님 좋아해요. 그냥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주는 건 ‘인간 여자’와 밥 한번 못 먹어본 모태솔로 남자 4호(이주승)다. 오랫동안 친구로만 지내온 여자 5호(박희본)와 남자 5호(서준영)는 프러포즈 상황극을 하다가 서로가 꿈꾸는 결혼과 삶의 방향이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아직 모르는, 어쩌면 사랑이 시작될 수도 있는 그 미묘한 순간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덩달아 설레는 일인지 <썸남썸녀>를 보며 알게 됐다. 요즘 본방송 시간을 기다리며 TV 앞에 앉는 대신 PC를 켜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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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2호(차미영)의 주입식 운명론 대화의 기술
1단계: 맛있는 거 좋아해요? 나도 그런데! 와, 신기하다. 우린 진짜 공통점이 많네요~. 2단계: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예요? 혹시… 클림트? 나도 제일 좋아하는데, 우리 진짜 인연이다~. 3단계: 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맞혀볼래요? 어머, 신기하다! 우린 역시 운명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