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울만의 <미스 줄리>는 스웨덴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단막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도도하고 오만한 귀족 줄리의 이루지 못할 욕망을 그린 이 작품은 억압받는 여성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치열하게 파고든다. 배우로서는 잉마르 베르만의 페르소나로 활약했고 감독으로서는 여성의 이중적인 심리를 깊이 있게 그려낸 리브 울만이 이 연극을 원작으로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여배우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줄리 역에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캐릭터를 주로 소화해온 제시카 채스테인이 낙점된 것 역시 필연인 듯 보인다. 엄마와 딸처럼 닮은 두 여인의 숨겨놓은 마음을 들었다.
-토론토와 인연이 깊다고 하던데. =나의 개인적이고 작은 이야기와 함께하는 도시다. 2차대전 때 공군 비행기를 수리하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토론토로 건너왔다. 항상 가죽점퍼를 입고 내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묻어 있다.
-<미스 줄리>는 이미 유명한 연극이지만 오래된 이야기다. 영화로 만들게 된 계기가 뭔가. =스트린드베리는 배우로나 연출가로나 친숙한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이미 많이 다뤄봤기에 <미스 줄리>를 선택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언제나 사람들 사이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막막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스토리와 자신의 체험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작에 충실하다. 스토리만 따와서 현대적으로 각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관객은 이야기가 현실과 너무 가까우면 이야기 안에 있는 걸 잘 보지 못한다. 대신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 자신도 모르게 본질에 다다가곤 한다. 우리 삶을 묘사하기 적절한 ‘색다른’ 환경, 고전의 힘은 거기에 있다. <미스 줄리>는 서로 다른 계층의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귀족에게 평민의 삶은 불가해한 것이다. 그것은 99%와 1%의 빈부로 나뉜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보고 있지만 서로를 듣지 않고 살고 있는, 끊어진 연결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영화 속 줄리는 집에, 계급에, 자기 자신에 갇혀 있는 여자다.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는지. =물론이다. 알다시피 여자와 배우라는 조합은 감옥에 갇히기 최상의 환경이지 않나. (웃음) 항상 보이지 않는 벽과 압박을 느낀다. 지금은 나이에 갇혀 있는 걸까? (웃음)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다. 피부색, 고향, 심지어 억양이나 사투리마저 당신의 감옥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런 문제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거다. 영화 속 노라는 춤을 통해 타인과 소통한다. 반면 줄리는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기만 하다가 점점 비틀린다.
-당신은 어떻게 감옥에서 벗어났나. =나를 해방된 여자로 봐주는 건 기쁜 일이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번 애쓰지만 아직 잘되지 않을 때가 있다. 타인의 기분을 섣불리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연기를 예로 들면 상대배우에 맞춰서 연기하는 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일이다. 행동의 근거는 항상 자신의 내면에 있어야 한다. 연출자로서 배우들에게 원하는 건 하나다. 그들이 내가 되길 바라지 않고 그들이 그들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그게 나의 일이다.
-제시카 채스테인은 젊은 시절의 당신을 떠올리게 한다. =제시카만큼은 아니지만 인기가 많긴 했다. (웃음) 다만 그때는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흔들릴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경로로 자신의 인기를 접할 수 있는데, 제시카가 특히 대단한 건 온갖 시선과 말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다. 그녀는 친절하고 겸손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