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밀당’의 노하우를 집약한 가르침 속뜻 ‘열려라 참깨’의 21세기 버전
주석 원래는 아이폰의 잠금화면을 여는 안내문이었다. ‘열려면 미끄러지게 만드시오.’(slide to unlock) 말이 길어서 번역자가 꾀를 낸 모양이다. ‘밀어서 여시오’가 더 짧은 말이지만, ‘lock’의 어감이 딱딱하니까 ‘잠금’이란 답답한 말을 고른 거겠지. ‘잠금’에는 ‘찰칵!’ 하는 소리가 들어 있으니까(‘ㅈㄱ’을 세게 발음하면 ‘ㅊㅋ’이 된다). 이렇게 해서 ‘unlock’은 ‘잠금해제’가 되었다. 누군가 화장실의 여닫이문에 달린 미닫이 잠금장치 옆에 ‘밀어서 잠금해제’란 글자를 적어 넣었다. 그 사진이 인터넷에 회자되자 밀어서 잠금해제할 수 있는 모든 사진이 뒤이어 올라왔다. 이 사진들에서는 아이폰 바탕화면에 깔면 앞의 말과 ‘밀어서 잠금해제’란 뒤의 말이 깔끔하게 이어져 문장이 완성된다. 이 진화과정을 되짚어보자.
처음에는 말놀이 차원의 사진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물놀이 사진에 붙인 “오늘은 간만에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어서 잠금해제, 혼자서 머리를 깎는 원빈 포스터에 붙인 “미용실 안 가고 머리를” 밀어서 잠금해제, 모나리자 사진에 붙인 “잠든 사이에 친구가 장난으로 내 눈썹을” 밀어서 잠금해제, 차두리 사진에 붙인 “간 때문이라면 머리를 빡빡” 밀어서 잠금해제 따위가 그것이다. 창의력 공부에 도움이 되는 유아용 바탕화면이다.
정치 풍자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배에 올라 4대강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는 그분을” 밀어서 잠금해제, “야 이 반란군 놈들아,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 놈들의 머리통을” 밀어서 잠금해제 등이 그런 예다. 밀어주고 싶은 인물을 확실히 밀어주겠다는(?) 역발상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다. 연애담에 포함된 사진들은 아픈 가슴을 유머로 달래고자 한다. “목숨과도 같았던 그녀를 잊기 위해” 밀어서 잠금해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너” 밀어서 잠금해제, “친구야, 걱정 마. 내가 뒤에서” 밀어서 잠금해제 같은 문장들이 그렇다. 본래 연애는 ‘밀당’이 기본이다. 당기기만 하지 말 것, 그이를 밀어내서 딸려오게 만들 것, 이 가르침을 과도하게 실천하면 저 사진들처럼 벼랑 위에 서게 된다.
가장 감동적인 사진은 ‘unlock’의 원래 의미를 그대로 구현한 사진이 아닐까 싶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서 제작한 공익광고 얘기다. 앰네스티는 국가 권력에 의해 투옥, 구금되어 있는 정치범들을 구제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다. 손을 묶은 쇠사슬과 몸을 가둔 철문에 채워진 자물쇠에 저 문구가 있다. “밀어서 잠금해제.” 우리가 SMS에 서명하는 것만으로도 저들을 구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다. 얼른 밀어줘야겠다. 내 폰은 아이폰이 아니지만.
용례 ‘밀어서 잠금해제’는 ‘열려라 참깨’의 새 버전이다. 이 명령문에 제일 가까운 것은 <개그콘서트>의 ‘발레리no’ 사진이다. 남자 발레리노들이 바 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사진 말이다. 그 바를 밀어서 잠금해제하고 나면, 발레리노들의 민망한 부위가 노출될 것이다.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이 다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