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은 거대한 마술상자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그곳에서 나오는 물건을 짐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공장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러니 언젠가부터 물건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아니지, 이제 공장들 태반은 외국에 있다.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완제품만이 우리 앞에 놓인다. 소설가 김중혁은 그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 과정은 물건의 이력을 알아내는 과정이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이제 한국에서는 명을 다해가는 몇몇 제조업의 초상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종이, 콘돔, 브래지어, 간장, 가방, 지구본, 초콜릿, 도자기, 엘피, 악기, 화장품, 맥주, 라면…. 여기에 김중혁 자신의 ‘글 공장’도 들어간다. 영화를 많이 보는 건 물론 <씨네21>에 ‘김중혁의 바디무비’를 연재중인 그는 “원고량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는, 영화 대사를 패러디한 재치 있는 삽화를 넣기도 했다. 물샐 틈 없는 기술을 자랑하는 콘돔 이야기는 신기하고, 공장 직원 대부분의 경력이 15년 이상이라는 지구본 공장은 멋지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조립하는 전문가가 탁자와 배 사이에 지구를 꼭 끼우고 무심하게 여기저기 툭툭 쳐가면서 대충 끼워넣는다고. 공장의 풍경 외에도 그 물건의 흥망성쇠와 관련한 작은 일화들도 있는데 지구본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불티나게 팔린다. 그외에도 책장, 만년필, 인공눈물을 비롯한 물건들에 대한 그림 에세이가 있다. <메이드 인 공장>은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처럼 취재와 필자의 개성이 고루 묻어나는 재미있는 논픽션이다. 여기 실린 글은 <한겨레> esc섹션에 연재된 글을 모은 것인데, 기획과 섭외의 도움을 받아 많은 공장에 들어가 궁금증을 충족시킨 소설가 김중혁이 못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