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아픔을 겪었다는 것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필수적인 것일까. 송지수(김선영)는 그렇다고 믿는 사람인 것 같다. 지수는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때마다 그 사람을 잃는다. 그녀는 지금 막 또 한명의 애인을 잃은 참이다. 살인사건과 관련된, 그녀가 마주보기 두려워하는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늘 그녀 주변을 어른거린다. 지수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정신과 의사 준상(홍경인)의 존재를 알게 된다. 준상의 사별한 아내는 괴한에게 강간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호기심이 생긴 지수는 준상이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가기로 한다.
상처 입은 두 남녀의 결합이라는 스토리는 예상 가능하다. 영화는 여기에 지수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한 인물을 삽입한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영화는 지수와 준상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몰두하는데 작위적인 설정과 성급한 관계의 점프 등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오래 끌고 가진 못한다. 준상 역시 의사이기 이전에 치료가 시급해 보이는 환자인 탓에 이들을 둘러싼 성적인 트라우마가 해결될 도리 없이 전시된다. 이런 장면들은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통로로 쓰였다고 보기에 과도한 측면이 있다.
영화에서 최면치료와 함께 준상의 치료법으로 중요하게 제시되는 것이 연극치료인데 환자들이 트라우마의 순간과 단계적으로 마주하기 위해 쓰인다. 어쩌면 영화의 모든 장면은 지수가 과거의 나와 대면하기까지의 연극치료 과정으로도 보인다. 때문에 관객은 러닝타임동안 그녀의 치료 과정을 함께 겪어야 한다. 그러나 대면 순간의 카타르시스도 재현된 성폭력 장면의 불쾌감을 씻어주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