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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채우는 건 결국 우정과 사랑
정지혜 사진 백종헌 2014-09-11

<야간비행>의 다섯 배우들이 말하는 <야간비행>

(*이 인터뷰에는 <야간비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줄기차게 말해온 이송희일 감독이 <야간비행>으로 학교 속 폭력의 먹이사슬을 들여다봤다. 그곳의 학교는 폐쇄되어 있고 그 속의 소년들은 모두 다 외롭고 아프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모두 잘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 속 소년들을 대신해 누구보다도 그들을 이해하려 애썼을 출연배우 다섯명을 만나보기로 했다. 청춘배우들의 입을 빌려 그들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야간비행>의 아이들도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 이송희일 감독이 전해준 영화에 관한 짧은 코멘터리와 배우 5인방이 꼽은 <야간비행> 명장면도 덧붙인다.

우등생 용주(곽시양)는 같은 반 친구이자 일진인 기웅(이재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다. 이들과 중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기택(최준하)은 반장 성진(김창환) 무리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한편 용주를 마음 깊이 아끼는 준우(이익준)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떠밀려 또다시 전학을 가야 한다(<야간비행>의 상세내용은 <씨네21> 969호 참조).

이송희일_인지도 있는 배우들은 퀴어영화라고 하면 99% 하지 않으려고 하죠. 신인, 무명배우들을 엄청나게 만나봤어요. 연기의 구력을 갖춘 배우보다는 캐릭터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쪽으로 캐스팅해나갔죠. 하지만 증명되지 않은 신인배우들과의 작업은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매 신 발성부터 감정까지 다 잡아가면서 작업했으니까요. 게다가 이번에는 떼로 나와서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에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웃음)

씨네21_촬영현장에 감독님의 육두문자가 마구 날아다녔다고 하던데요.

일동_(자리를 비운) 재준이가 있었어야 했는데. (웃음)

곽시양_현장에서는 상당히 과묵하신 편인데 연기 부분에서 부족하다 싶으면 육두문자가…. (육두문자 좀 들었나요?) 그럼요, 안 들을 수가 없죠. 하지만 퀴어적 요소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하는 대로 믿고 맡겨주셨어요.

이익준_처음 뵀을 때는 상당히 온화한 분인 줄 알았어요. 배려도 많이 해주시고. 근데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그러시더라고요. “나랑 작업하면서 많이 배우게 될 거야. <백야>(2012) 때 (이)이경이가 나한테 진짜 많이 혼났는데 너도 그럴 거다”라고요.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죠. (웃음) 근데 감독님의 육두문자가 연기할 때 엄청나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김창환_저는 뒤늦게 작품에 합류했어요. 그러다보니 약간 위축돼 있었나봐요. 첫 촬영 때 “왜 이리 눈을 깜빡거리냐”고 지적을 받았죠. 감독님을 영화제나 사석에서만 뵙다가 작업자로서 현장에서 만나니까 그건 또 다르더라고요. 현장 콘티로 가는 감독님의 작업 방식을 따라가다보니 쫄깃쫄깃한 긴장감도 느껴지고요. 순발력 있게 상황에 대처해나가는 재미도 경험했어요.

이송희일_영화의 모든 인물들에게 결핍을 부여하고 싶었어요. 결국 결핍이 비극을 만드는 거니까요.

씨네21_인물 모두 저마다 깊은 상처를 안고 있어요.

이재준_기웅은 겉으로 보면 일진이고 문제아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무척 외로운 아이예요. 처음엔 기웅 안의 그 외로움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감독님과 프리 단계부터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어떻게든 이 친구의 외로움을 찾아가봐야겠구나 싶었어요. 그게 가장 어려웠어요.

곽시양_겉으로 보면 낙천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용주의 내면에는 외로움이 있어요. 누구에게도 기웅을 향한 자신의 속내를 밝히지 못하니까요. 스스로 생각해봤죠. ‘살아오면서 (용주만큼) 이렇게까지 외로운 적이 있었나’ 하고 말이죠. 그러다가 용주 역이 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사람은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모두 비슷하지 않겠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거니까요.

최준하_친구들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과 억울함이 가득한 인물이 기택이에요.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용주, 기웅과 만날 붙어다녔는데 말이죠. 용주는 모범생이라 어른들에게 예쁨받고 기웅은 카리스마가 있어 주변에 애들이 저절로 붙어요. 기택은 자신만 고립돼 있는 것처럼 느꼈을 거예요. 그래서 기택이가 그렇게 만화를 좋아했는지도 몰라요.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김창환_그 나이 때 누릴 수 있는 웬만한 건 다 가지고 있는 아이가 성진이에요. 근데 성진에게는 한 가지가 없어요. 진짜 친구요. 이 아이 옆에 진정한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가진 않았을 거예요.

이익준_준우는 성소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세상과 맞서려는 인물이에요. 결핍이 있다면 그건 용주를 향한 사랑에서 오는 거겠죠. 결국 용주는 기웅을 바라보니까요. 준우가 용주를 보내는 장면에서 정말 마음이 아파서 많이 울었어요.

이송희일_아이들의 관계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도구를 찾았어요. 실제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중요시하는 아이템 중에서 말이에요. 담배도 그중 하나예요.

씨네21_용주의 사진기, 용주와 기웅의 자전거, 기택과 성진의 담배처럼 영화에는 눈에 띄는 소품들이 등장해요.

곽시양_사진기는 용주에게 추억이에요. 좋았던 한때를 잊지 않고 기억해두고 싶은 거죠. 내면적으로 외로움도 많으니까 (그걸 달래기 위해) 소중한 걸 찍어두고 싶은 거예요. 자전거는 기웅과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도구고요.

최준하_기택이 성진 패거리로부터 담배 셔틀을 당해요. 그런 기택에게 성진이 그러죠. “너도 한대 피울래?” 그때는 기택이 안 피우거든요. 근데 용주를 배신하고 나서는 성진이 주는 담배를 받아들어요. 나는 네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김창환_성진의 위치, 상황에서는 굳이 담배를 자기 돈으로 사지 않아도 돼요. 성진에게 담배는 누군가를 자기 쪽으로 포섭하거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빌붙기 위한 중요한 도구 같아요. 그러다보니 촬영 내내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원래는 담배가 안 맞아서 잘 안 피웠는데 이번에 정말 엄청 피웠어요. 이송희일 감독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 지금도 담배 생각나네요. (웃음)

이익준_편집이 많이 됐지만, 사실 준우야말로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아요. 담배를 들고 유혹의 댄스를 추는 장면도 있었고요. 다른 친구들에게 담배가 복종과 포섭의 도구였다면 준우에게는 누군가를 유혹하는 도구였죠. 저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야간비행> 촬영 당시에는 하루에 한갑씩 피웠던 것 같아요.

이송희일_공부가 전부인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폭력이 발생할 만한) 공백이 있게 되죠. 그 안에서 힘의 역학관계와 권력의 이동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약자가 계속 약자로만 머물지 않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기생하거나 의존하면서 말이죠. 촬영 전에 자료조사를 하다보니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하던 아이가 폭력조직에 들어가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요.

씨네21_<야간비행>을 찍으면서 자신들의 학창 시절을 자연스레 떠올렸을 것 같은데요.

이재준_특별히 서로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도 다 알겠더라고요. 어디든 다 비슷할 테니까요.

곽시양_대부분의 학교가 그럴 거예요. 남고의 경우는 1학년 때 서열정리가 다 이뤄져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2, 3학년 때는 싸움이랄게 별로 안 일어나죠.

이익준_싸우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그냥 앉아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곽시양_(웃으며) 아, 준하야.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최준하_(약간 당황하며) 저는 정말 모르는데요.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한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일동_그렇다면 이미 정리 다 했다고? 그래서 고등학교를 편하게 다녔다고? (웃음)

이익준_그러고보니 제가 학교 다닐 때 학교에 게이 친구가 있었어요. 좀 여성스럽다 싶으니까 애들이 그 아이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아냈죠. 다른 아이에게 고백했다는 사실까지 밝혀내더라고요. 애들의 놀림감이 된 그 아이는 결국 전학 갔어요.

김창환_정말 안타까운 게 <야간비행>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는 거예요. 교복 입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겪는 일을 다룬 영화라 그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많이 봤으면 했거든요. 지금의 청소년들이 이미 더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성 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소수자들이 볼 수 있길 바랐는데 아쉬워요.

곽시양_저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이 영화가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건 학교 폭력, 왕따 문제거든요. 저는 운이 좋아서 학교 다닐 때 학교 폭력을 행사하는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도 어느 학교에서는 <야간비행> 속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수두룩할 거란 말이죠. 한편으로는 부모님들이 <야간비행>을 더 많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퀴어물이라고 안 보시기보다는 학교 안의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는 걸 봐주셨으면 해요. ‘내 자식이라면’ 하는 마음으로요.

김창환_(신중히 말을 고르며) 요즘 세상이 참 시끄럽잖아요. 이제 저도 20대를 지난 30대를 바라보게 되니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뭔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곽시양_어쩌면 폭력이 있던 학교와 학교 너머의 사회가 똑같은 거죠. 학교에는 물리적인 에너지가 있었다면 이제는 정말 더 커진 권력과 마주하게 된 거예요. 조그마한 울타리에서 울타리가 없는 세상으로 나온 거고요. 저는 어른들이 먼저 고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야 아랫사람들도 따라가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제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저도 ‘나만 피해를 입지 않으면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니까요. 세상을 한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가다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최준하_(수줍게 웃으며) 저는 아직 완전히 사회로 나온 게 아니라서요. 반은 학교에 발을 걸치고 있어서 그런가 아직 좀 헷갈리네요.

이송희일_학교 안에서 성적에 따라, 학생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점점 더 구분짓기가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건 결국 관계의 친밀성을 훼손하는 일이잖아요. 구분짓기라는 말은 어른들의 세계에나 있던 언어였는데 말이죠. 고등학생 때 친구라는 존재는 ‘순수한 어떤 것’이잖아요. 거기에 어른들의 언어가 끼어든 거죠.

씨네21_10대 시절에 친구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최준하_고등학생 때는 부모님보다도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더 많잖아요. 저 역시 부모님과의 마찰보다 친구들과의 문제가 훨씬 더 크게 느껴졌고요. 그땐 친구들에게 되게 많이 의존하게 돼요. (그때의 아이들에게) 학교는 작은 사회니까요.

곽시양_극중 용주가 이런 말을 해요. “친구가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잖아.” 이 한마디가 많은 걸 말하는 것 같아요.

이익준_저만 해도 고등학생 때 만난 친구가 평생 가는 것 같아요. 나중에 보면 성적은 무의미해지고 친구는 끝까지 남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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