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황금마차>는 유쾌한 인권영화이자 흥겨운 음악영화다. 치매에 걸린 큰형과 함께 네 형제가 여행을 한다. 서울서 온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가 합류하자 흥이 더해진다. <하늘의 황금마차>는 영화 속 설정처럼 감독, 스탭, 배우들도 함께 여행하며 찍은 영화다. 노인의 인권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음악과 판타지를 뒤섞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멸 감독은 해외와 국내 평단에서 고평을 받았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가 독이었다면 <하늘의 황금마차>는 득이었다고 말한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작가로서 뜻을 공유하는 스탭들과 현장을 꾸리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는 말이다. 무인도에서 차기작을 촬영하다 상경한 검게 탄 얼굴의 오멸 감독을 만났다.
-예전 인터뷰를 보니 트렁크 인생이라고 들었다. 지금도 그러한가. =이제는 배낭으로 바뀌었다. 보증금을 빼서 영화를 만든 <지슬> 당시가 트렁크 인생이었다면, 이제는 영화와 연극을 위해 좀더 가벼워지려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다닌다. 제주 시내에 살고 있지만 영화 찍거나 영화제에 다니는 등 바깥 생활에 익숙하다.
-<하늘의 황금마차> 개봉을 앞두고 있다. 요즘 근황은 어떠한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요즘 거제도 아래 무인도에서 자파리 멤버 여섯명과 <달마의 눈꺼풀>이라는 새 영화를 촬영 중이다. 2~3년 전부터 바다나 무혼굿 관련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못 견디게 무기력해졌고, 나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지난 시나리오를 버리고 새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영화 제목은 동굴의 고승인 달마가 9년간 참선을 하다가 졸려 눈이 무거워지자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설정에서 따온 것이다. 요즘 잠 못드는 많은 사람들의 심경이 힘겨운 달마의 눈꺼풀 같지 않나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슬>의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전작 때문에 오는 부담감은 별로 없었다. 다만 이번 영화가 인권영화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어서 생기는 부담은 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인권’을 자연스러운 태도로 만나지 못했다는 게 함정이었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표현하기 힘든 무게감이 있지 않나. 자연스럽게 인권을 표현해내고자 했던 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슬>이 유명세를 타서 우리(자파리연구소)에게 득인 줄 안다. 하지만 실상 <지슬>이 독이고 이번 영화 <하늘의 황금마차>가 득인 셈이다. <지슬>이 성과를 보게 했다면 이번 작품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자파리연구소 사람들은 소박하고 욕심이 없다. 안 그러려고 해도 뭔가 <지슬>로 인해 분위기의 바람을 맞게 되니 알게 모르게 몸에 거품들이 묻더라. 이번 작품은 우리 자신의 태도에 대해 선명한 공부를 시켜준 경험이 되었다.
-이번 영화는 배경이나 인물에서 <어이그, 저 귓것>이나 <뽕똘>의 성격과 비슷해 보이지만, 참여인원과 규모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촬영에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에 예상했던 예산에서 오버된 부분이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동안 스탭들이 영화제작하면서 너무 고생을 해 이번에는 좀 나누어주고 싶었다. <지슬>에서 조금 들어온 수익이 고스란히 이번 영화의 초과된 예산으로 넘어갔다. 창의적인 시도들을 해보려 현장을 자율적으로 풀어놓았는데 뜻하지 않은 난관이 생겨나기도 해서 만족스럽지 않게 촬영한 부분들이 있었다. 영화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도 생겼다. 11대의 차량을 움직이다 보니 주차가 가능한 현장을 찾아야 했다. 그런 배려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공간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 렇게 찍으려던 공간에서 밀려나고 내가 현장 상황 때문에 지고 있던 거다.
-재촬영을 결심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을 만드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본래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공개하려 했지만 최종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아직 미혼이라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공개하려고 보니 내 영화가 아직 미발달된, 장애가 있는 영화처럼 보여서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국가인권위원회나 부산국제영화제에 신뢰가 무너져도 감독으로서 무책임하게 마무리할 수 없었다. 제주도에 있는 멤버들로만 스탭을 만들어 추가로 3회차 촬영을 했고, 앞의 그림 중 버릴 것은 버리고 50%는 다시 찍었다.
-1930년대 노래를 듣고 음악을 중심에 놓은 로드무비를 구상했다고 들었다. 영화를 처음 이끌었던 이미지 혹은 음악이 있었나. =<하늘의 황금마차>라는 노래를 듣고 바로 떠올렸다. 이난영이 부르기도 했고, 백설희가 부르기도 했다. 옛 노래였지만 참으로 놀라운 노래였다. 노래를 듣는 순간 이게 영화의 제목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춤추면서 시신을 안고 가는 엔딩 음악으로 적절하겠다고 생각했다.
-<하늘의 황금마차>는 로드무비다. 네 형제가 큰형의 죽음을 앞두고 목적지도 없는 여행을 한다. 와중에 밴드가 등장한다. 어떻게 이러한 로드무비를 구상했나. =영화를 찍는 우리가 함께 여행하며 만들어가는 영화를 기획했다. 여행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질감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장소 헌팅도 미리 하지 않았다. <하늘의 황금마차>는 시나리오를 좀 빈 듯이 하여 영화를 찍으면서 완성해간 영화다. 내게는 시나리오의 완결성보다 현장에서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스탭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현장에 대한 꿈이 제대로 실현되었나. =영화의 스탭들은 일종의 붓이다. 그런데 실상 작품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양한 스탭들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일종의 직업인으로 보이더라. 내가 다루고 싶은 붓의 질감이 아니라, 다른 현장과 다른 감독에게 익숙한 붓인 듯해서 내 생각 같지만은 않았다. 내심 현장에 ‘작가’들이 있었으면 했는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장에 ‘근로자’가 많았다. 독립영화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현장이 두렵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도 이번 작품으로 감독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현장이 아닌가 하는 실감을 했다.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똑같이 시스템이 돌아가고 직업인으로서의 스탭들이 와서 찍고 간다. <지슬> 때는 그 부분을 감수하고 찍었으나 이번에는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역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문석범(하르방 귓것), 김동호(둘째), 양정원(용필 삼촌), 이경준(뽕똘), 오영순(해녀) 배우 등이 인상적이다. 그들과의 인연은. =이 배우들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정서가 비슷하다. 감독으로서 행운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네 형제를 담당한 배우들과는 실제로도 매우 친하다. 그동안 영화를 함께해온 분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에 네 형제가 등장하는데, 어떻게 이러한 가족을 상상했나. =영화 4차 촬영을 마치고 돌아보니 영화에 뭔가 큰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 형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형제애’가 빠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공백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묻어났던 것이다. 내 삶이 비어 있는데 어떻게 영화를 잘 찍을 수 있겠는가. 또 나 자신의 부모님들이 건강하시니 노인 문제에도 절실함이 없었고 그동안 한번도 그분들과 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없었다. 감독의 그릇만큼 담기는 게 영화구나 싶었다. 이러한 공백들에 대해서는 연결 고리만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보완했다. 그리고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때 부모님을 모시고 영화제 관람 겸 동해안 여행을 했다.
-<어이그, 저 귓것>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죽음을 일상과 연결짓는 방식이 특이하다. =죽음이 한 개인의 인생사에서는 매우 특별한 일이기는 하지만 생과 사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거다. 이 작품에서 나는 죽음을 특별하게 다루지 않으려 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 전에 오영순 할머니(극중 해녀 역할)가 돌아가셨다. 사실 <어이그, 저 귓것> 때 간암 판정을 받으셨다. 그 영화에서도 <지슬>에서도 오영순 할머니는 계속 죽는 역할을 담당하셨다. <어이그, 저 귓것>에서 오영순 배우에게 죄송스럽지만 돌아가시는 장면을 미리 감정을 상상하시라며 노래 신을 부탁해 촬영한 적이 있다. 실제 노래하시다가 너무 우셔서 그 장면을 영화에는 쓰지 못했다. <지슬> 때엔 치료차 계룡산에 계시다 오셔서 촬영을 하셨다. <하늘의 황금마차> 때에도 간곡히 부탁해서 오신 것이다. 오영순 할머니가 편찮으셨기에 작품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품마다 이게 유작이니 찍으셔야 한다고 농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부고를 들은 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감독과의 대화(GV) 때 오영순 할머니를 소개하다 갑자기 울컥해버렸다.
-이번 영화에는 오영순 할머니의 기천무 장면이 등장한다. =본래 그 장면은 시나리오에는 없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영순 할머니가 계룡산에서 배운 기천무를 하고 계시더라. 그림이 되겠다 싶어 밴드 단원들이 기천무를 배우는 장면을 영화에 넣었다.
-함께 여행하는 킹스턴 루디스카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텔레비전에서 <불후의 명곡>을 보다가 발견했다. 스카 밴드를 처음 보았는데 참 흥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아직 뭔가 발현이 안 된 듯한, 자신 내부의 흥을 이끌어내지 못한 느낌이 있어서 아쉬웠다. 이후 영화제작을 위해 연락을 해서 만나게 되었다.
-흰 러닝셔츠에 파자마, 날개로 된 밴드 단복이 인상적이다. =킹스턴 루디스카가 배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질감이 컸다. 우리 배우들은 대개 촌스럽지만 밴드 단원들은 도시적이다. 처음에 그들이 평상복을 입고 찍은 장면을 다 버렸다. 도시적 생활에 익숙한 밴드 단원들을 바닥에 내려서게 해주자, 그렇게 생각해낸 것이 흰 러닝셔츠에 파자마다. 그것도 여행 중에 거의 갈아입지 않아서 누렇게 때가 탄 옷들로 말이다. 밴드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음악인은 우리에게 또 다른 천사다. 음악은 찬송가처럼 영혼을 달래주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밴드 단복에 천사의 날개를 단 거다. 참, 뽕똘의 연두색 추리닝은 <어이그, 저 귓것>의 의상 그대로다. 이경준 배우는 자신이 등장한 배역의 옷을 보관해두고 있다. (웃음)
-영화를 찍으며 이 장면이다 하는 감이 온 부분이 있었나. =시나리오에서 노인이 돌아가시는 장면만은 분명하게 구상했었다. 장소는 폐허인 건물의 2층이어야 했다. 2층의 창문 앞에는 큰 나무가 있어야 했다. 그 나무는 울어주듯이, 손짓해주듯이 살랑대면서 사람들이 지켜주지 못한 노인의 죽음을 지켜봐주는 거다. 마침 그러한 집을 발견해서 그곳에서 촬영했다.
-노래 <바다의 꿈>이 흘러나오는 무덤 합주 신이 꽤 인상적이다. =사실 이 영화를 진심으로 엎어버리려 결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버리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장면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무덤은 내 20대를 함께 보낸 공간이다. 괴로울 때 찾기도 하고 홀로 시간을 보내며 놀던 공간을 언젠가 영화나 연극을 통해 재현해보고 싶었다. 무덤이란 공간은 죽음의 공간이다. 삶을 숙연케 만드는 곳이기도 하지만, 내가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많아 와서 놀다가는 것을 좋아할 것 같다. 그런 느낌으로 찍은 장면이다.
감독은 <하늘의 황금마차>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유쾌하게 바라보며 삶을 건강하게 긍정하는 영화로 선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에서처럼 인생이란, 목적지가 분명치 않은 긴 여행이다. 쓸쓸하고 처량하지만 황홀하고 마법 같은 순간들도 존재한다. 감독 오멸은 영화가 예산과 기술에 달린 것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다. 더디더라도 함께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찍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투자를 거절하고 착수한 차기작이 <달마의 눈꺼풀>이다. 6명이라는 최소한의 스탭으로 무인도에서 촬영되는 이 영화는 배우 1인이 등장하는 시적인 작품이 될 것 같다. 내년에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밝은 분위기의 해녀영화인 <인어전설>을 촬영할 예정이다. 감독 오멸은 지금 가장 왕성히 생산 중이다. <지슬>처럼 서늘하고 숙연한 작품도 있지만, 그의 창작의 원천은 언제나 ‘자파리’(쓸모없는 짓거리), ‘귓것’(바보스러운 짓)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