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의 교수이자 영화학자인 크리스 베리가 한국을 찾았다. ‘세계 속의 한국영화: 한•중영화 커넥션과 그 너머’라는 주제로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와 한국영상자료원이 공동주관하는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중국 내 소수민족 영화를 꾸준히 연구해왔고, 그중에서도 조선족 출신인 영화감독 장률에 관심이 많다. 4년 전에도 장률 감독의 영화에 관한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그는 장률과 티베트의 페마 체단 감독의 영화 세계를 비교했고, 문화이론에서 기존의 민족 개념을 넘어서는 트랜스내셔널리즘적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중국영화로 학사, 박사 학위를 받으며 꾸준히 공부해오던 차였다. <China on Screen>이라는 책을 공동집필하면서 소수민족의 영화가 나의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1990년대 중반 한국에 학술 투어를 왔다가 운 좋게도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김소영 교수를 만났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학문적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장률 감독의 영화를 연구해왔는데. =<당시>(2004)를 처음 봤을 때 상당히 독특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중국의 평범한 아파트를 매우 아름답고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그려냈는데 그게 퍽 인상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중국의 인디영화 감독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차이니즈 코리안 장률이더라. <망종>(2005)을 본 뒤에는 그가 마이너리티, 민족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았다. 소수민족의 영화를 선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장률 감독과 티베트 출신의 페마 체단 감독을 비교해 발표했다. =둘 다 민족성 개념 안에서 마이너리티 문제를 고민하는 감독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로드무비를 찍고 있다는 데 있다. 여정을 통해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페마가 온전한 형태의 티베트에 대한 향수가 있다면, 장률은 온전한 한국을 꿈꾸는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티베트의 문화 영역은 여전히 중국 내에 포함돼 있지만 한국의 그것은 남한, 북한, 그리고 옌볜 세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한국은 오랫동안 분리돼 있어서 하나의 통합된 문화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장률이 흥미로운 건 그가 민족이라는 경계를 넘어서면서도 여전히 한국적인 것(한국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소수민족 영화라는 건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는 개념인가.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소수민족 영화가 되는 건 절대 아니었다. 과거 중국만 봐도 민족 개념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정했으니까. 그러다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변화가 생겼다고 본다. 정체성 역시도 시장 논리대로 ‘너희가 알아서 해라’라는 식이 돼버렸으니까.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트랜스내셔널리즘이라는 시각으로 소수민족 영화에 접근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 =나만 해도 반은 영국인이고 반은 호주인이다. 과거의 민족 개념으로는 복잡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어졌다. 민족영화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선형적인 발전의 논리로, 내셔널 시네마의 프레임으로만 민족 영화사를 기술할 수는 없다. 민족이 아니라 관계, 커넥션이라는 측면에서 근대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트랜스내셔널리즘적 접근이야말로 세계화의 문제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