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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일이 만든 영화들
2002-03-02

삶을 사색하는 스크린

<내 안에 부는 바람>출연 : 1부 - 이충인 박철, 2부 - 조재현 김명조, 3부 - 유순철

유년기, 노년기를 맞으면서 달라지는 시간의 의미를 탐색하는 영화. 유럽 모더니즘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난해한 영화라는 평을 받았지만 감독 자신은 누구나 한번쯤 떠올렸을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대중영화`라고 생각하는 작품이다.유년기를 다루는 1부 <말에게 물어 보렴>은 감독이 프랑스에서 계획했던 단편 프로젝트에 고향은 그대로인데 자신만 변했다는 낯선 느낌이 더해진 10분짜리 영화다. 천둥번개가 휘몰아치고 난 아침, 산골에서 사는 할머니는 손자에게 마을에 가서 시간을 알아 오라며 심부름을 보낸다. 산비탈을 내달려 마을에 도착한 아이는 외양간에서 소에게 장난도 걸고 여기저기 열심히 한눈을 판다. 노인이 혼자 지키고 있는 시계방에서 확인한 시간은 아침 열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정신없이 놀다보니 어느덧 산자락에는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아이는 할머니에게 열시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시간은 어른과 다른 의미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감독은 물리적으로 정해진 시간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자연 속에서 시간을 느끼는 아이의 모습으로 영화의 시작을 연다.2부 <내 안에 우는 바람>은 유년기에 이어지는 청년기의 시간이다. 항상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에 서 있는 청년은 꿈을 잊기 전에 녹음기를 찾는다. 그뒤 녹음한 내용을 글로 옮기는 것이 그의 일. 어느날 여자친구와 함께 그녀의 고향 속초에 간 청년은 자신이 기억한 이미지가 이미 바래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선 그동안의 기록을 모두 불사른다. 감독이 “아마 조재현은 연기하기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뭐가 뭔지도 모를 주문을 했으니까”라고 말할 정도로 2부는 모호하면서, 또 허무하다. 1부가 `순수의 시간`이라면 2부는 `허무의 시간`이라는 것. 이 허무를 지나 영화는 노년기로 넘어간다. 3부 <길 위에서의 휴식>은 어느새 시간의 끝을 맞게 된 노인의 일상이다. 노인은 수의를 준비하고 영정 사진을 찍고 초상화를 남기며 가깝게 다가온 죽음을 준비한다. 가끔 치매 증상까지 보이게 된 그는 어느날 밤 자신의 무덤을 파는 꿈을 꾼다. 각각 고향과 레오스 카락스의 선물이 동기가 된 두편과 달리 3부는 2부를 끝내면서 구체화된 작품이다. 죽음을 삶이 어쩔 수 없이 동반하는 무언가로 생각하는 노인들에게서 `구체적 시간`을 발견하는 이 영화는 “시간 사이의 충돌”을 담는다는 점에서 3부작에 적절한 마침표를 찍는다.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출연: 설경구, 김소희

지방대 영화학과 교수 김은 현실의 표면만을 떠도는 것 같은 인물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나쁜 피>에서 비상하는 듯한 몸짓으로 정지한 드니 라방의 모습을 보여주며, 스스로도 새의 이미지에 집착한다. 그는 날개가 답답한 현실과의 끈을 끊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연인 영희는 그런 김을 자신이 발딛고 있는 땅 위에 끌어내리고 싶어한다. 위태롭게 지속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영희의 부탁을 받은 김이 영희 고향집에 함께 인사하려 내려가면서 파국을 맞는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 때문에 갈등하는 남자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은 현실의 무게가 가슴을 짓눌러 오는 것처럼 황량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부산 출신 록밴드 레이니 썬이 영화음악을 맡은 점이 눈길을 끈다.▶ 전수일감독의 나홀로 영화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