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은 언론•출판의 자유(헌법 제21조 제1항)와 학문•예술의 자유(헌법 제22조 제1항)를 보장한다. 영화의 제작 및 상영도 다른 의사표현의 수단이나 예술표현의 수단과 마찬가지로 헌법에 의한 자유를 보장받는다. 다만 영상매체의 특수성에 따라 ‘청소년 등에 대한 상영이 부적절할 경우’ 등에 한해 헌법재판소는 유통단계에서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등급을 심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93헌가13)했다. 이 결정문은 상영등급분류 제도의 합헌성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지만, ‘상영등급분류 제도는 영화의 제작 및 상영의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행 상영등급분류 제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상영등급분류를 신청하고도 상영하지 못하는 영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제도가 현실에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명백한 증거다. 상영등급분류 제도가 헌법이 정하는 표현의 자유에 역행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그 문제의 원인은 ‘제한상영가’다.
영화에 내려지는 사형선고
제한상영가 등급은 과거 상영등급분류 제도의 ‘등급보류’ 조항이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에 해당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2000헌가9)에 따라 2002년 제4차 영화진흥법 개정으로 도입되었다. 배경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청소년이 음란•폭력 등의 영화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성’ 등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된 지 12년, 제한상영가 등급은 영화제작 및 상영의 표현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고,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와 달리 ‘성인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제한상영가 등급이 현실에서 검열로 작동한다면, 이는 헌법이 금지하는 것으로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청소년 보호 등의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이 목적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달성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영화 및 비디오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제29조 제2항의 제5호의 제한상영가 규정)를 따로 구분하여 등급 부여를 할 필요가 있다면, 이 등급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법률은 제한상영가 영화의 상영 및 유통을 엄격하게 제한(영비법 제43조)하고 있다. 제한상영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될 수 있으며, 제한상영관에서는 제한상영가 외 등급의 영화는 상영할 수 없다. 그리고 제한상영가 영화는 비디오물 등으로 제작•상영•판매•전송•대여하거나 시청에 제공될 수 없으며, 제한상영가 영화의 광고 및 선정도 제한상영관 안에서만 게시(영비법 제33조)할 수 있다. 이는 사전 금지가 아니라 유통 과정을 제한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논리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제한상영가 영화와 제한상영관에 대한 엄격한 규정은 제한상영관의 설립과 운영을 차단하는 기능을 했다. 제한상영가 영화만 상영이 가능한 조건에서 제한상영관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연간 최소 30~40편의 제한상영가 영화가 공급되어야 한다. 영화 공급이 없으면 제한상영관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공급자의 사정은 어떨까? 공급자 입장에서는 제한상영가 영화의 경우 제한상영관 외의 유통이 불가능하고, 광고나 선전도 엄격하게 제한되기 때문에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영화를 공급한다는 것은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다. 해당 등급을 받으면 다른 등급을 받기 위해 영화를 삭제•수정할 수밖에 없다. 제한상영가 관련 규정은 사실 상 해당 등급의 영화를 전면 금지하고, 자진 삭제•수정을 요구하는 검열인 셈이다.
제한상영가 등급이 ‘금지등급이 아니라 상영등급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한상영가 영화가 실제적으로 상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한상영관의 설립•운영을 유도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면, 제한상영관에서 다른 등급의 영화도 상영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제한상영관이 설립될 수 없겠다고 판단되면, 제한상영가 영화를 제한상영관 외에서도 상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제한상영가 영화 광고와 선전에 대한 과도한 금지도 완화해야 한다. 제한상영가 영화를 선택하여 보고 싶은 관객은 해당 영화를 선택하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제한상영가 등급의 목적이 해당 등급의 영화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향유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제한상영가 영화의 전면적인 유통 금지도 개정되어야 한다. 상영 후 비디오물 등으로 제작•상영•판매•전송•대여하지 못하면 성인 관객들의 감상의 권리가 심각하게 제약받을 뿐 아니라, 투자금의 회수도 불가능해진다. 비디오물 등으로 유통될 수 있게 하되, 청소년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한상영관의 대안을 모색하다
지난 8월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된 포럼 ‘아트플러스에 제한상영가를 허하라!’는 제한상영가 등급이 검열로 작동하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제안의 요지는 ‘제한상영관이 없어 상영하지 못하는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를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님포매니악>을 수입한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현행 영비법 속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객의 알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현행 영비법의 관련 조항 중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천하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상영등급분류를 받지 않고도 상영할 수 있다는 조항(영비법 제29조 제1항 제2호)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영진위는 해당 조항에 의거하여 ‘비영리 사업목적 수행을 위하여 영화를 제작, 상영하는 단체 또는 민법 등에 의하여 설립된 법인과 그 부속 기구’가 ‘최소 1일 이상의 일정기간을 정하여 국내외에서 선정•출품된 다수의 영화를 일반인 또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상영하는 행사’에 한해 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을 한다. 실제 국내에서 개최되는 많은 영화제들이 이 추천을 통해 자율적으로 등급을 부여해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실정법 위반이나 청소년 유해성과 관련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안의 한계는 분명하다. 영진위의 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은 비영리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라, 영화 시장 내의 표현의 자유와 관객의 알 권리를 본질적으로 확대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가 아닌 예술영화관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이 예상되는 영화를 삭제•수정하지 않고 상영하고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금지된 것을 해소하고 공론의 장으로 끌어낼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한상영가 문제가 더이상 방치되어서는 곤란하다. 본질적인 해결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현행 상영등급분류 제도는 제한상영가 문제 외에도 상영등급분류를 받지 않을 권리의 문제, 과도한 등급 부여와 재심 구조의 문제, 그리고 행정권이 주체가 되는 절차의 문제(민간 자율등급제도의 도입)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제작자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관객에게는 더 나은 등급분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 전반에 대한 토론이 지속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