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라는 표현이 이렇게 잔인할 수도 있다는 걸 절감하는 나날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을 하자는데 왜 이 단어가 쓰여야 할까. 특히 유가족을 만난 새누리당이 이 표현을 쓰는 것,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 못해 고통스럽다. 무슨 나눠 먹기 대상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일찍이 ‘협상’이라는 표현도 가당치 않았다. 온 힘과 지혜를 쏟아 원인을 알아내고 대책을 세우자는데 어떤 타협이 있을 수 있나. 세월호 특별법을 시시껍절한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짓이다. 아니나 다를까. 민생경제가 세월호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는 얘기가 버젓이 나온다. 의회 민주주의와 입법권 침해라고도 한다. 대체 법은 왜 있고 국회는 왜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모든 철면피한 주장의 배후에는 특별법을 통해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7시간 행불의 주인공 대통령도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대통령 한명의 체면을 살리자고 이 따위 ‘쉴드’를 쳐대고 있는 것이다.
무능한 야당과 무책임한 여당이 사실상 ‘포기’한 가운데, 대통령과 직접 만나 해법을 찾아보겠다는 유가족의 바람과 요구는 당연하다. 그런 이들을 경찰차 벽으로 가둬놓다시피 해놓고는 대통령은 자갈치 시장으로 선수촌으로 돌아다닌다. 바쁜 척을 하려는 것인지, 우롱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자식 잃고 통곡하는 이들 앞에서 이런 행보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기를 쓰고 특별법을 막으려 해도 정권의 임기는 정해져 있다. 지금 당장 대통령을 ‘과잉보위’하는 이들이 다음 총선이 지나고 권력 누수기에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다. 누구보다 더 사납게 물어뜯을 가능성이 크다. 모쪼록 대통령이 ‘법치’를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 법치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통치가 길을 잃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게 법치이다. 대통령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