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잘못했다는 사과 속뜻 그만하라는 명령
주석 지난 지방선거에서 화제의 인물은 단연 고승덕 후보였다. 서울시 교육감으로 출마한 그는 높은 인지도 덕택에 1위를 달렸으나, 3위로 레이스를 마치고 말았다. 다른 요인도 있겠으나 친딸의 폭로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친딸도 나 몰라라 해온 인물이 어떻게 서울의 교육을 책임질 수 있느냐는 딸의 항변은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화제가 된 것은 그의 동영상이었다. 딸의 폭로를 공작정치로 맞받아치던 그는 딸이 반박 글을 올리자 거리유세 중에 딸에게 사과했다.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 이 동영상과 보도사진이 패러디의 대상이 되어 수많은 작품들을 낳았다. 그 작품들을 분류해보려고 한다(물론 이것은 패러디물의 의미이지, 그의 의도는 아닐 것이다).
먼저 록 콘서트 버전. “못난, 아버지를, 못난, 못난, 아버, 아버…”로 이어지다가, “미안하다”고 내지르는 작품이다. 이것은 고 후보가 저 말을 샤우팅 창법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어로도 “미안하다”의 각 음절을 격음으로, 쇳소리를 섞어낼 수 있다니. 그는 사실은 화가 났던 게 아닐까? 둘리의 마이콜, 디제이, 동네 노래방 버전도 이 범주에 든다.
다음으로 히어로물 버전. <엑스맨>의 여러 인물들(울버린, 매그니토, 스톰, 사이클롭스), 토르, 나루토, 헐크 등으로 변신한 사진들이다. 그는 영웅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그 동작으로 적을 베고 쇠붙이를 모으고 폭풍우를 일으키고 빔을 쏘고 망치를 휘두르고 나선환을 만들고 화를 낸다. 고 후보가 “미안하다”를 지나치게 연음하던 것도 이렇게 보인 한 원인이다. 이상하게도 그의 발음은 “미아, 나다”로 들렸다. 그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너는 미아(迷兒)야. 그리고 나는 나야.
스포츠 경기 버전도 있다. 이 버전에서 그는 농구선수가 되어 미들슛을 쏘고, 통키가 되어 불꽃슛을 쏘고, 홍명보가 되어 엔트으리를 외친다. 그가 치켜든 왼손은 슛을 하거나 스파이크를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어쩌면 저 동작으로 적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끝으로 두더지 잡기나 투명인간 버전이 있다. 수많은 그가 두더지 굴에서 출몰하거나 옷과 마이크만 남은 사진이다. 이 버전은 사진 속 인물이 딸에게 사과를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 사실 처음 문장은 꽤나 이상하다. 그는 “딸아, 미안하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미안하다”니, 그는 자신을 삼인칭으로 만들어서 숨기고 있는 것인가? 저 말은 “세상의 모든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란 뜻으로 읽힌다. 그는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었을까? 왜 나만 갖고 그래? 아들은 건드리지 말랬더니, 딸을? 아니, 딸이!
용례 패러디는 패러디의 대상을 호감 있는 인물로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예방 차원에서 마지막 버전을 소개한다. 자동차 뒤 유리에 붙은 패러디물이다. “못난 앞차를 둔 뒤차에게 정말, 미안하다!” 추월해서, 먼저 가란 소리다. 겉보기엔 시인인데 안에는 여럿이 산다. 중구난방을 받아 적다보니 그동안 시집, 비평집, 신화책, 동물책 들을 여럿 냈다. 이번 글의 목표는 ‘구비전승의 바이블’ 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