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와 비슷한 또래가 등장하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비슷한 연령대에서 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주인공의 경험을 내 것처럼 바짝 흡수하게 되는 데다 나이가 들어서는 영화를 떠올리는 일이 곧 나의 한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성장영화를 소개해온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청소년에게는 든든한 마음의 친구를, 성인에게는 잊었던 기억 속 친구를 만날 기회다. 제16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8월 21일(목)부터 28일(목)까지 8일간 아리랑시네센터, 성북천 바람마당, 성북아트홀에서 열린다. 40개국 142편의 영화 속 발칙한 소년, 소녀들의 이름이 곧 당신의 기억에 저장될 친구들의 목록이다. 첫 번째로 만날 친구는 <꼬마 재즈왕 펠릭스>의 귀여운 꼬마뮤지션 펠릭스다. 백인과 흑인이 어우러진 재즈의 도시, 남아공에 살고 있는 펠릭스는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음악에 대한 열정이 꿈틀댄다. 그러나 재즈에 미쳐 일찍 생을 마감한 아버지 때문에 오래도록 마음 졸였던 어머니로서는 펠릭스가 아버지의 전철을 밟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펠릭스는 반대를 무릅쓰고 든든한 조력자들의 힘을 빌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두 번째로 소개할 친구들은 ‘키즈아이’ 섹션의 못 말리는 악동들이다. <쌍둥이와 마블갱단>의 쌍둥이 형제 집과 잽은 여름방학을 맡아 홉(HOPE)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가진 악명 높은 재교육학교에 입학한다. 첫날부터 소동을 벌이며 애꾸눈의 교장 팔코네티에게 단단히 ‘찍힌’ 쌍둥이 형제와 친구들은 팔코네티에 대항하는 동시에 우연히 손에 넣은 보물지도를 바탕으로 학교에 숨은 다이아몬드를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앙큼하기로는 <타임머신 스푸크닉>의 10살 소녀 리케를 따라올 자가 없다. 영화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9일을 전후한 일주일을 다룬 작품으로, 분단이라는 역사적인 상황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SF적인 상상력과 버무린 시도가 의미 있는 작품이다. 서독으로 떠난 괴짜 삼촌을 대신해 리케가 타임머신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앤트 보이>의 펠레는 평범하지만 평범하기 싫은 아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줄 친구다. 평범한 소년 펠레는 어느 날 개미에 물린 뒤 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 초능력과 성인 남자를 한방에 날려버릴 괴력을 지니게 된다. 슈퍼히어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개미를 소재로 활용한 점이 흥미롭다. 판타지 성격이 짙은 ‘키즈아이 섹션’과 대조적으로 ‘틴즈아이 섹션’은 10대 청소년들의 사랑과 우정, 방황의 이야기를 좀더 ‘리얼’하게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성(性)에 눈뜬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성애묘사와 동성에 대한 동경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혼재되는 심리를 세심하게 포착한 작품이 눈에 띈다. <아이들>의 10대 소년 시거는 육상부 동료 마크와 연못에서 수영을 하던 중 부지불식간에 키스를 나눈다. 이날 이후 그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언뜻 히스 레저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시거 역의 히시 블롬을 만났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울 영화다. ‘스트롱아이’ 섹션 상영작인 <소녀의 첫 경험>에서 다이안의 경험 역시 시거의 고민에서 멀지 않다. 다이안은 어느 날 나타난 자유분방한 영국 소녀 줄리아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와 어울린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인지 또래에 대한 모방심리인지 모를 다이안의 행동, 사춘기 이후 미묘해진 아버지와 딸의 관계 등을 통해 성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