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조차 씨가 말랐다고 울부짖은 뒤 와이파이도 안 되는 숲속에 스무날 넘게 처박혀 있다 나왔더니, 음모‘론’이 무색하게 온갖 음모들이 횡행하고 공포영화를 찾을 필요 없이 현실이 납량특집이다. 이래가지고야 유구한 심리스릴러서스펜스호러가 어찌 장르적 탄력을 지탱할 수 있을까. 그 모든 영화적 상상을 동원해도 유병언 사체 발견 미스터리를 능가하지 못할 지경인데.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방불명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발끈한 만큼이나 해명에 궁색하다. 외계인 접견 외에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마블의 외계 확장판도 무색해질 지경이잖아.
육군 28사단의 일병 폭행 사망 사건에서 가해 피해의 끔찍함만큼이나 마음을 짓누른 건 수많은 목격자가 방관자였다는 사실이다. 약을 타거나 치료를 받으러 드나들면서 폭행 장면을 보거나 상습적임을 안 이들이 한둘이 아닌데 “내 일이 아니라서”, “괜히 찍힐까봐” 모른 척했다고 한다. 단지 군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일까. 혹시 우리가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왔고 그렇게 조장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해를 받다가 대물림으로 가해를 하게 됐다’는 해석은 ‘맞아야 정신차린다’는 생각만큼이나 비겁하고 위험한 책임회피이다. 진실은폐에 혈안인 관리자일수록 이런 ‘거짓 일반화’를 쉽게 한다. 사건 다음날 보고받은 국방부 장관도 제대로 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수많은 젊은이들 데려다놓고 그 머릿수로 제 밥그릇 보존하는 군 수뇌부에 어떤 합리적인 조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대체복무나 국회 옴부즈맨, 민간법정 등 일련의 ‘문민화’ 정책도 이런 기득권자들이 버티고 있는 한 일시적인 위안에 그치는 게 아닐까.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없으면 모병제도 요원하다. 당장 일과 시간과 내무반 구조라도 바꿔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24시간 한 공간에 있는 ‘지옥’에서는 일단 벗어나야 할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