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2014)이 7월 22일부터 27일까지 총 6일간 개최된다. 국내 최대 만화/애니 페스티벌인 SICAF 2014는 ‘도전, 용기 그리고 히어로’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총 43개국 362편의 다채로운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 만화축제, 야외상영, 코스프레 이벤트, 버스킹 공연, 작가/감독 사인회 등 다채로운 행사도 마련되었다. 만화행사로는 한국 순정만화의 거장 김동화 특별전과 국내 장기연재 인기만화 <열혈강호> 2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린다. 또한 <맛 일번지>의 구라타 요시미와 기묘한 공포만화가 이토 준지 초청전도 기획되었다. 올해에는 네이버 TV Cast, SICAF 온라인영화제가 동시에 진행되어 관객의 접근성을 한층 높였다.
서정적 영상과 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개막작 <메밀꽃, 운수좋은 날 그리고 봄봄: 한국단편문학애니메이션>(안재훈, 한혜진)은 한국 단편문학을 애니메이션화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공개작이다. 경쟁작으로는 인디 애니계의 거장 빌 플림턴의 <아내의 유혹>이나 브라질의 유쾌한 가족 어드벤처 <꿈틀이>(파울로 콘티)가 눈길을 끈다. 한국 애니판타지의 새 장을 연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장형윤)와 2014 자그레브영화제 단편 그랑프리 수상작인 <연애놀이>(정유미)도 만날 수 있다. 러시아, 폴란드의 예술적 애니메이션의 정수를 보여줄 특별전과 스웨덴과 브라질의 애니메이션 역사를 되짚는 초청전도 마련되어 있어 동시대 가장 새로운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조망할 수 있다.
추천작 장편
<소년과 세상> 알레 아브레유 / 브라질 / 2013년 / 80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소년은 마을을 떠나 세상으로 나간다. 각박한 도시의 삶 속에서 소년은 가난하지만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난다. 농장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위압적인 관리자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긴다. 영혼과 손으로 하는 노동을 기계가 점점 대체해나가자 힘없는 사람들은 더더욱 갈 곳을 잃는다. 어느덧 청년이 되어 시골 마을로 되돌아온 소년은 자신이 도시에서 만난 남자들이 미래의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서정적 작화에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결합한 이 인상적 작품은 순수한 소년의 눈으로 본 착취와 인공의 세계를 담아냈다.
<행복의 기술> 알레산드로 락 / 이탈리아 / 2013년 / 84분 형과 함께 듀엣으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 세르지오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택시 운전을 한다. 나폴리 거리를 배회하는 그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택시에 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베수비오 화산과 거리에 즐비한 쓰레기 더미, 끝없이 내리는 비 그리고 냉소적인 세르지오의 독백은 이 애니메이션을 묵시록적 비전으로 가득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 세르지오는 멀리 인도 사원에 있는 형의 편지를 읽은 뒤 구원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행복의 기술>은 한 니힐리스트가 아시아적 명상과 불교적 세계관에 다가가는 구원의 판타지다.
<라이트, 아니마, 액션!> 에두아르도 칼베트 / 브라질 / 2013년 / 100분 지난 100년간 브라질 애니메이션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예술사 다큐멘터리다. 브라질 애니메이션의 태동기부터 극장 애니와 상업광고 애니의 변천사가 다양한 자료와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다. 전위적 아티스트의 활약이나 대중잡지에 문예운동이던 ‘코르델 문화’를 반영한 애니메이션 등 실험적 애니메이션의 경향도 살필 수 있다. 빛을 통해 움직임의 환영을 만드는 애니메이션은 흥겨운 볼거리였고, 비판적인 실천의 대안이었으며 때로는 전위적인 예술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라이트, 아니마, 액션!>은 다른 세계로 가는 환상적인 문을 연 브라질 애니메이터들의 인생사이기도 하다.
<지오바니의 섬> 니시쿠보 미즈호 / 일본 / 2014년 / 102분 <지오바니의 섬>은 숙명적 비애감과 투명한 서정성으로 유명한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모티브로 하여 패전 뒤 일본인의 신산한 이산의 과정을 다루었다. 어머니 없이 자란 준페이와 칸타 형제의 이름은 섬 방범대원인 아버지가 좋아하는 동화 속 주인공인 지오바니와 캄파넬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작은 섬이 소련의 영토로 귀속되고 이들의 평화로운 삶은 위기에 처한다. 오시이 마모루의 오랜 파트너이자 <무사시>(2009)의 연출자인 니시쿠보 미즈호의 신작으로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2014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특별우수상을 받았다.
추천작 단편
<코다> 알린 홀리 / 아일랜드 / 2014년 / 19분 한밤의 클럽 앞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다. 푸른 혼으로 밤거리를 떠돌던 남자의 뒤를 검은 죽음의 사신이 따른다. 세상의 풍경에 좀더 머물고 싶지만 그에게 시간은 충분치 않다. 연주의 종결부를 의미하는 제목(coda)이 드러내듯 이 서늘한 단편의 주제는 죽음이다. 작품은 삶의 마지막을 향해 떠나는 고독하고 쓸쓸한 영혼의 경유를 따라간다.
<촉감> 장 샤를 엠보티 마로로 / 프랑스 / 2014년 / 14분 루이는 끌로에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털 알레르기가 있는 루이는 주방에 들어온 작은 고양이가 못내 신경 쓰이고, 차츰 그의 결벽증은 극에 달해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촉감>은 사랑의 감각인 동시에 극도로 예민한 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신경증을 유발하는 촉각을 다룬 작품이다.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섬세하고도 민감한 감각을 탁월하게 형상화했다.
<토끼공화국> 아나 네델코빅/니콜라 마즈닥 주니어 / 세르비아 / 2013년 / 8분 마치 교전지역과 같은 폐허 속에서도 일상은 태연히 돌아간다. 토끼들은 언제나 행복하고, 공화국은 늘 민주적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뇌없는 토끼들의 맹목적 선거는 어쩌면 짓궂은 소녀들의 조작에 의한 것 같다. 섬뜩하고 사악한 단편 <토끼공화국>은 신랄한 현실비판 애니메이션이자 잦은 외침과 심각한 내전을 겪었던 발칸반도 대중의 정치성에 대한 공격적 알레고리다.
<집의 인생> 피에르 클레네 외 / 프랑스 / 2013년 / 10분 사람이 들지 않는 빈집은 자신의 거처를 떠나 세상을 여행한다. 압도적인 풍경들과 문명의 흔적 그리고 극지와 험한 산맥, 또 바다 끝까지 여행은 계속된다.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 집과 귀여운 개집도 동행한다. 의인화된 집들의 로드무비인 이 작품에는 인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사 하나 없이 사물들의 앙증맞은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태양소년과 이슬소녀> 이시다 히로야스 / 일본 / 2013년 / 19분 히나타는 같은 반 여학생 시구레를 짝사랑한다.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인 히나타는 새 그림으로 시구레와 친해지지만 곧 그녀는 먼 나라로 이민을 떠날 것이다. 내성적인 히나타는 시구레에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청량한 첫사랑의 감성 판타지인 이 작품은 간절한 마음은 공간을 초월해 언젠가 전달된다는 일본 순정 애니의 계보를 잇고 있다. 자주제작 애니인 <후미코의 고백>(2009) 이후 일본 애니의 신성으로 떠오른 이시다 히로야스의 유쾌한 신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