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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변동의 시작

레진코믹스, 올레마켓 웹툰 등 모처럼 뜨거워진 포털 밖 웹툰 필드

레진코믹스

웹툰 10년=포털 웹툰 10년

웹툰 10년이란 말 뒤에는 현재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웹툰의 형태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구축된 것임이 함축돼 있다. 웹툰은 곧 포털 웹툰이었고, 포털이 제시한 질서와 생태계가 곧 웹툰의 전부이다시피 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포털 사이트 바깥에서 웹툰이 아마추어 레벨을 벗어나 상업적 성과를 내며 생존에 성공한 경우는 근 10년 사이엔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웹툰을 주요 콘텐츠로 내세운 포털은 많게 잡아도 다음, 네이버, 파란, 야후 등 네곳 정도였고 그나마도 야후가 2012년 12월31일, 파란이 2013년 7월3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여기에 2012년 5월 네이트가 만화 서비스를 출판만화의 온라인판 게재 기조에서 웹툰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포털 웹툰은 다음, 네이버, 네이트 3사 체제로 정리된다. 결국 이 세 회사에 웹툰 자체가 달려 있다시피 한 셈이었다. 게다가 2009년 말 아이폰 정식 수입 이후 앱스토어에 만화 플랫폼을 정착시켜보려는 시도들이 작가와 콘텐츠 면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 만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가운데 2012년 말 포털 중심 콘텐츠 시장을 흔들려 했던 콘텐츠 오픈마켓 플랫폼 카카오페이지마저 안일한 방향 설정과 전략 부재로 사실상 실패했다.

이런 숱한 실패 사례들은 결국 포털 천하를 재확인하게 하는 듯 했다. 하지만 2013년 중반을 넘어가면서 웹툰 필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지각 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곰툰

지각변동의 주축, 레진코믹스와 KT 올레마켓 웹툰

먼저 성과를 내기 시작한 곳은 레진코믹스다. 2013년 6월7일 서비스를 시작한 이곳은 프리미엄 유료 웹툰 서비스를 표방하면서 인기 만화가와 더불어 포털 아마추어 게시판에서 이미 주목받고 있던 인물들을 대거 영입해 규모와 화제성과 실익을 동시에 챙기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첫달부터 흑자를 낸 스타트업”이라는 자사 소개가 말해주듯 유료 결제를 통해서라도 보고 싶은 만화들을 대거 양산해낸 레진코믹스는 1년 만에 회원 수 110만명, 연재 작품 270편, 게임 제작사에서 50억원 투자 등 다양한 숫자와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매체 브랜드이기도 한 ‘레진’ 아이디의 주인공 한희성 대표는 본래 19금성 포스팅을 통해 많은 팬층을 지니고 있던 파워 블로거로, 블로그 시절부터 이미 몇몇 작가와 함께 만화를 공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블로그를 통해 구축된 화제성과 개인의 캐릭터가 만화 웹진 구축에 활용된 재미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름을 듣고 찾아온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포털에서는 쉬 볼 수 없을 남녀 대상 성인 지향 콘텐츠들을 대거 도입하면서 가벼운 중/고등학생 대상 웹툰들에 질려 있던 성인 독자층을 대거 끌어들였다.

흔히 웹툰을 설명할 때 필수 요소로 꼽히던 덧글을 아예 달지 않은 것도 피드백 과부하에 시달리던 작가와 독자들을 되레 만족시켜준 역발상 전략으로 꼽힌다. 웹브라우저만 있으면 모바일과 데스크톱 차이나 OS에 상관없이 공인인증서 없는 간편결제가 가능하단 점도 이전까지의 만화 웹진과 레진코믹스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레진코믹스보다 한달가량 뒤인 2013년 7월17일엔 KT가 ‘올레마켓 웹툰’이라는 서비스를 열었다. 올레마켓 웹툰은 KT가 강풀/윤태호/주호민 등 유명 만화가들이 대거 소속돼 있는 작가 중심 에이전시 누룩미디어의 웹툰 사업 자회사 누룩코믹스와 손잡고 제작한 서비스다.

KT의 올레마켓 웹툰 서비스는 비교적 짧은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시기 면에서도 이슈 면에서도 좋은 흐름을 탔다. 마침 KT 올레마켓 웹툰 서비스가 준비 중이던 시기는 경쟁사인 SK가 네이트의 만화 서비스를 웹툰 체제로 전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반응이 적다며 작가 일부를 쳐내던 때였고, KT는 모바일에 대응하는 만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작가와 이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두달여라는 촉박한 시간 안에 누룩미디어 소속 작가들의 옛 작품과 신규 작가들의 작품들, 네이트에서 연재를 종료당한 작가들의 신작까지 다양한 라인업이 모일 수 있었던 건 상황과 조건들이 그럴싸하게 잘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KT는 이후 개장 1주일 만인 7월22일 모바일웹 전용이던 사이트를 PC에서도 볼 수 있게끔 개방했고, 8월28일에는 자사 IPTV망인 올레TV를 통해 일부 만화를 무빙카툰이라는 이름으로 영상 만화화했다. 통신망과 방송망을 동시에 갖춘 업체이기에 가능한 연동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탑툰

신규 플랫폼 러시? 공정하고 내실을 다지는 경쟁 필요

레진코믹스가 공세적 작가 기용과 이슈 파이팅으로 포털 바깥에서 만화로는 사실상 처음이다시피 한 상업적 성공 사례를 보이기 시작하고 KT가 올레마켓 웹툰으로 빠른 시간 안에 그럴싸한 진용을 갖춰내자 새로운 웹툰 플랫폼들이 속속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불과 1년여 사이에 키위툰(2013년 8월10일), 카툰컵(2013년 10월7일), 티테일(2014년 2월2일), 탑툰(2014년 3월1일), 커피코믹스(2014년 3월20일), 판툰(2014년 4월1일), 제트코믹스(2014년 4월10일), 곰툰(2014년 4월13일) 등의 웹툰 플랫폼이 등장했다. 절치부심 끝에 만화와 소설 중심 전자책 플랫폼으로 개편한 카카오페이지도 2013년 9월 개편 이후 신규 웹툰들을 계속해서 공개하고 있으며 2014년 하반기부터는 웹툰의 부분 유료화도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이들 새 웹툰 플랫폼들이 제대로 된 만화매체로서 준비되지 않았거나 일부의 성과를 보고 덤벼들었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위툰의 경우 공정하지 못한 저작권 이용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가 범만화계 차원의 집단 대응에 맞닥뜨려 오래지 않아 계약해지 및 서비스 폐쇄에 이르렀고 커피코믹스 또한 옛 출판만화 강세 시절 대표작들을 통해 기존 만화 독자층을 끌어모으려 했으나 신규 콘텐츠 창출에 실패한 이후 사실상 업데이트가 중단된 상태다. 양쪽 모두 게임개발사 출신들의 실패라는 점은 콘텐츠로서의 만화에 관한 공부와 존중 없이 마구잡이로 접근한 경우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카툰컵의 경우도 출판만화 강세 시절을 풍미한 중견 작가들을 야심차게 끌어들였다가 1년이 채 안 된 2014년 4월 25일 느닷없이 서비스를 접으면서 준비 없이 덤벼든 업체의 폐해를 보여주었다.

불공정 마케팅을 동원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남성향 에로 웹툰을 대거 내건 탑툰의 경우 ‘프리미엄 웹툰 서비스’라는 레진코믹스의 캐치 프레이즈를 따다 쓴 데 이어 최근엔 검색 엔진의 검색 결과에 곰툰 등 타 매체의 이름을 보고 들어온 이용자들을 탑툰으로 유입시키게 하고 네이버 웹툰의 덧글란에 탑툰 링크로 도배하다가 항의를 받고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2014년 7월2일).

올레마켓 웹툰

웹툰 10년이 지나고 이제 또 다른 필드가 열린 지 막 1년이 넘어서는 시점이다. 그사이에 포털 바깥의 웹툰 유료 이용층이 100만 단위를 넘기기도 하고 영상만화를 구현하며 스마트 디바이스 시대에 대응하는 만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한 곰툰 같은 업체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면은 준비 미비와 불공정 경쟁이 심화할수록 퇴색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로서의 대중은 그 누구보다도 냉정하고, 또한 유행에 그 누구보다도 민감하다. 모처럼 다가온 좋은 흐름이 뒤집히는 건 순식간일지도 모른다. 무너져내린 곳도 벌써 몇개나 된다. 게다가 포털 주도 10년의 웹툰이 문제로 지적받았던 것이 ‘다양성 부재’였다면, 결국 일부만이 살아남아 또 다르게 포털화하는 것 또한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모처럼 뜨거워진 웹툰 필드가 더 넓어지고 더 북적이되 필드 위에 선 선수들이 공정한 규칙 안에서 자신만의 특색으로 각자의 독자층을 확보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