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2일 2872권.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창립 15주년을 맞아 ‘알라딘과 함께한 기록’을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용한 기간과 구입한 책의 권수를 저렇게 알려준다. 책을 많이 샀다고 그걸 다 읽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읽으려고 마음만 먹다가 동네 폐지 수집하는 할머니의 유모차에 실어 보낸 책이 있는가 하면, 읽다가 잠들기를 반복해 포기한 책도 있다. <사회를 말하는 사회>는 그래서 반가웠는데, 읽었거나 읽다 만, 하지만 뉴스를 보다 보면 찾아 읽어야지 싶은데 도통 떠올려지지 않는 책들이 꽤 많이 눈에 띄어서다.
30개의 키워드를 통해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지형도를 그려내겠다는 시도로, 소비/잉여/허기/위험/과로/탈감정 등 가장 문제가 되는 이슈를 다룬 책을 서른명의 필자들이 소개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출판계가 ‘XX사회’라는 제목 장사에 얼마나 목을 맸는가다. 이 자체가 하나의 징후 아닌가 싶을 정도. 1%의 잘 팔리는 것을 나머지가 카피하는.
물론, 제목을 따라 지었다고 내용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이제 불안을 상시 느끼며 구매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며 격차를 내면화하고 아무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외롭게 죽어가는 일이 낯설지 않아졌다. 여기 소개된 많은 책들은 그 하나하나의 현상을 깊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도이며, 그 책들의 서평을 쓴 이들은 내용의 요약을 떠나 저자의 문제제기와 해결책 제시가 합당한지, 더 필요한 비판적 태도는 없는지 면밀히 살핀다. ‘XX사회’라는 제목의 원조인 <피로사회>에 대해서는, 이 책이 비록 큰 주목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책 속 문제제기가 이미 한국 지식사회에서 이야기된 바 있음을 조목조목 짚으며 ‘새로울 것 없음’과 ‘문화 사대주의’를 읽어낸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침몰 이후의 한국 사회를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도로 많은 책들이 다시 읽힌다. 책이 나온 지 시간이 흘렀을지라도 그 글을 읽는 필자들의 감각은 2014년의 대한민국에 속한다. 특히 1장에는 세월호와 엮어 읽을 만한 책들이 많이 소개되며, 4장에는 가족의 해체와 공동체의 붕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를 주목하는 책들이 주로 실렸다.
책 말미에서 사회학자 정수복은 “우선 나부터 ‘영혼 없는 물질주의자’, ‘정신 나간 감각주의자’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작은 일에서부터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반성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져야 자기반성도 의미가 생기는 법이다. 잠시 멈추어 서서 현상을 읽어내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단 살아남기가 너무나 어려운 사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