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기담>의 전봉관이 ‘고민’과 ‘사랑’이라는 두 키워드를 풀기 위해 1930년대 신문 독자상담 코너에 주목했다. 당시 신문 게재 원칙에 “풍기를 문란할 사실은 일체로 접수치 않음”이라고 되어 있다고는 하나, 읽다보면 <사랑과 전쟁>이 따로 없다. 심지어 전근대와 근대가 뒤섞여 있다보니 변호사가 간통과 강간을 분간하지 못하고 성폭행을 당한 아내를 간통녀로 몰아 내쫓으려는 남편도 있다. 남자를 만나 정조를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동성연애를’ 하는 편이 낫다고 권하기도 했다. 흥미진진한 풍속사로 읽을 수도 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약간’ 달라지긴 했으나 큰 틀에서는 아직도 전근대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1930년대의 연애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조혼한 모던 보이와 모던 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워낙 이런 ‘불법’ 연애가 횡행하다 보니 사귀기 시작할 때 민적등본(지금의 호적등본)을 떼어 교환하는 풍속이 있을 정도였다. 호적에 올리지 않은 아내와 아이가 있는 남자와 만나고 있는데 그가 이제 아들까지 낳았다며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묻는 하소연이 드물지 않은 시대인 것이다. 소설가 이태준은 고부갈등에 대해 “몽매한 시부모면 아들이 싫어하다가 다시 데려온 당신을 전보다 더 미워하고 시기할지도 모릅니다. 결코 친정에 가지 말고 딸 잘 기르시고 시부모를 역시 웃어른으로 잘 섬기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십시오”라고 조언한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이 지나 2014년의 풍속사를 들여다보면 “옛날엔 이랬네” 하고 웃을 수 있을까. 혹시 모든 것이 더 나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신기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괜한 근심이 든다.
[도서] 고민이 있소 들어주시오
글
이다혜
2014-07-10
<경성 고민상담소> 전봉관 지음 /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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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고민이 있소 들어주시오 <경성 고민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