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방과 후 학교는 또 다른 세계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최고 인기남 키리시마의 부재가 불러온 균열을 통해 평온함을 가장했던 고교 생활의 이면을 그린다. 어느 금요일 오후 배구부 에이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뒀다는 소문이 퍼진다. 주말로 다가온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모습을 감춘 키리시마 때문에 배구부는 대타를 찾느라 정신없고 방과 후마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길 기다려 그와 어울리던 친구들은 당황한다. 작은 균열은 조금씩 뻗어나가 급기야 그와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곳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에는 키리시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키리시마가 왜 사라졌는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그의 부재를 둘러싼 각자의 반응을 여러 시점에서 재구성할 뿐이다. 영화는 얼핏 청춘영화의 외양을 띠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청춘영화의 공식과 환상이 깨지는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키리시마가 없는 며칠을 먼저 보여주고 이후 반복을 통해 같은 시간, 같은 사건이 각기 다른 인물들에게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는지 비교한다.
영화 속 학교는 분명한 계급 사회다. 매일 즐거운 척 적당히 살아가는 능력자들과 별달리 인정받지 못해도 오늘을 즐기며 버텨나가는 하위 집단의 학생들로 나뉘어져 있다. 인기 있는 상위의 학생들은 중심이던 키리시마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반목한다. 가령 배구부에서 키리시마의 대타였던 코이즈미는 그의 빈자리를 메우려 고군분투하지만 역부족이다. 반면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하위의 학생들은 그의 부재와 관계없이 각자의 하루에 충실하다. 영화동아리 부장 마에다 료야(가미키 류노스케)는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다. 료야와 친구들은 상위 그룹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사도 신경 쓰지 않고 좀비영화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영화를 찍기 때문이다. 료야가 만드는 좀비영화 속 대사,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는 그런 하위 그룹 학생들의 결연한 심정처럼 들린다.
기존 청춘영화에 대한 비판의식과 동시에 지루할 만큼 사소한, 키리시마의 실종과 전혀 관계없는 소소한 일들까지 촘촘히 쌓아 ‘학교의 일상’을 완성하는 방식은 방황하는 청춘에게 오늘을 충실히 사는 법을 역설한다. 아직 고사하지 않은 일본 청춘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