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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변태 할래요?

지치지 않고 극단을 추구하는 라스 폰 트리에와 그의 신작 <님포매니악 볼륨1>

논란의 사내가 온다. 이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 논란이 기본이다.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다. 게다가 이번에는 하드코어 포르노가 될 거라고 진즉부터 그 자신이 예고해왔던 영화다. <님포매니악>이다. 하지만 영화를 뜯어 보니 무작정 야한 매력말고 다른 묘한 매력들이 더 많다. 다소 긴 이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님포매니악 볼륨1> <님포매니악 볼륨2>로 몇주를 두고 순차적으로 개봉된다. 라스 폰 트리에의 새로운 변태적 세계를 즐겨보자.

“저의 다음 영화는 포르노가 될 겁니다. 여자가 주인공이고요, 하드코어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중입니다.” 2011년 <멜랑콜리아>로 방문했던 칸영화제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그렇게 차기작 계획을 밝혔다고 합니다. “나는 히틀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중얼거려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멜랑콜리아>의 주연배우 커스틴 던스트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던, 그러고 나서는 결국 구설수에 올라 칸영화제 ‘기피 인물’로 공식 발표되는 수모를 겪었던 그해에 말입니다.

논란과 쟁점을 몰고 다니는 영화를 즐겨 만들어온 폰 트리에지만 과연 포르노까지 만들 것인가, 믿지 않은 건 우리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안티크라이스트>와 <멜랑콜리아>에 연이어 주연으로 출연한 프랑스 여배우 샬롯 갱스부르도 그 말을 들었을 때 그저 실없는 농담을 또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온 각본을 읽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결국 폰 트리에가 예고했던 그 영화, <님포매니악>의 주인공이 되어 있습니다.

1편과 2편으로 나누어 개봉, 이후 감독판도 예정

영화에 관한 한 폰 트리에의 생각이 가장 궁금하지만 언론 홍보용으로 만든 자료집에 테이프로 입을 봉한 자기 사진을 일부러 넣어놓은 걸 보면 이 영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 확고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멜랑콜리아>의 히틀러 발언 사태 때문일 겁니다. 그는 <님포매니악>이 첫 상영되었던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도 영화제에는 참여했지만 기자회견장의 단상에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 직전 <님포매니악>팀이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그의 성격이 제대로 드러납니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일부러 만들어 입고 온 이 티셔츠가 볼만합니다. 칸영화제의 황금 종려나무 가지가 가슴 한가운데 훤하게 박혀 있고 그 아래로는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었습니다. 칸영화제의 기피 인물로 공식화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반발이거나 혹은 또 다른 허세의 자학일 겁니다. 가만히 있어도 될 것을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그가 영원히 입을 닫을 것 같진 않습니다.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일단 영화는 총 4시간 분량이며 1부와 2부로 나뉘어 개봉됩니다. 1부는 <님포매니악 볼륨1>, 2부는 <님포매니악 볼륨2>, 1부가 1장부터 5장까지, 2부가 6장부터 8장까지 담고 있습니다만, 각 부의 상영시간은 거의 비슷합니다. 본래는 5시간30분 정도의 상영시간이었지만 상업성을 고려하여 4시간 분량으로 편집한 것이라 폰 트리에는 훗날 감독판을 발표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만 본다면 이 영화는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 <멜랑콜리아>에 이어지는 “우울증 3부작”의 마지막 작품에 속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다면 우울증이라는 용어가 <안티 크라이스트>와 <멜랑콜리아>에 절대적이었던 것처럼 이 영화에도 그러한 것인가 갸우뚱하게 될 것입니다. 폰 트리에는 언급한 전작들을 만들 당시에 지독한 우울증이 그와 그의 영화를 얼마나 지배했는지 심각하게 토로하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님포매니악 볼륨1>을 보면, 희한하게도 유머러스한 면모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제 곧 보게 되겠지만 <님포매니악 볼륨2>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님포마니아(nymphomania)란 여자 색정증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반면 남자 색정증은 새티라이어시스(satyriasis)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물론 색정증이란 보통 사람들에 비해 성적 욕구를 훨씬 더 많이 느끼고 행하는 이들을 병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님포마니아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답고 고혹적인 정령들인 ‘님포’에서 유래된 것이고 병적 증상으로 분류되면서 지금과 같은 신조어로 탄생하게 됐다고 합니다(참고로 새티라이어시스는 반은 사람 반은 염소인 그리스신화의 성욕 왕성한 신 새티로스로부터 온 표현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님프매니악>은 색정광 여인의 일대기입니다. 폰 트리에는 그녀의 유년 시절에서부터 대략 50대까지의 성 생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조’입니다. 1부는 주로 어린 조(스테이시 마틴)의 이야기이고 2부는 주로 나이 든 조(샬롯 갱스부르)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2부는 보지 못했으니 1부의 내용을 중심으로 말해보겠습니다. 어둡고 습한 벽돌 건물들이 마치 어떤 막처럼 겹겹이 둘러쳐져 있는 좁은 골목길입니다. 한쪽에는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고 또 한쪽에는 녹슨 환풍기가 삐걱거리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길에 쓰러져 있는 나이 든 조를 발견한 노년의 남자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이 그녀를 집에 데려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다 사연을 묻습니다. 나이 든 조가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회상으로 들어가 어린 조를 중심으로 화면이 펼쳐집니다. 그렇게 1장이 시작됩니다.

1장 ‘낚시 대전’은 어린 색정광 조가 제롬(샤이아 러버프)이라는 첫 남자를 경험하게 되고 또 다른 색정광 친구와 함께 ‘기차에서 누가 더 많은 남자 유혹하나’ 놀이를 했던 일화를 보여줍니다. 2장 ‘제롬’은 조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제롬을 그녀가 첫 출근한 회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3장 ‘미세스 H’는 조의 수많은 남자들 중 한명이었던 어느 이름 모를 남자의 부인(우마 서먼)에 관한 모습을, 4장 ‘섬망’은 죽어가던 아버지(크리스천 슬레이터)에 대한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5장 ‘오르간 학파’에서는 제롬을 포함하여 조가 특별히 몸으로 기억하는 세명의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그 일화들을 경험하는, 무표정하면서도 고혹적인 자태의 어린 조, 모델 출신의 신인 여배우 스테이시 마틴의 연기가 빛납니다. 제롬 역할을 맡은 샤이아 러버프도 <트랜스포머> 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른 연기 방식으로 덜떨어진 얼간이를 연기해내고 있어 주목을 요합니다. 특히 러버프는 제작진의 요구를 받고 20분 만에 자기 성기 사진을 찍어 보냈다고 하니 이 영화에 대한 그의 애착이 보통은 아닐 것입니다.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하드코어 포르노

그런데 <님포매니악 볼륨1>을 보고 흥미로웠던 건 심의에 맞추어 하얗게 ‘블러’ 처리된 그들의 흐릿한 성기가 아닙니다. 폰 트리에는 일찌감치 이 영화의 장르를 하드코어 포르노라고 명명했습니다만 거기에 이 영화의 모든 매력이 깃들어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일단은 이야기가 예상 밖으로 공들여 잘 짜여 있습니다. 조이외의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인 각자의 자리들을 갖고 있으며 그들과 조를 엮어내는 폰 트리에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가 이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놀랍고 충격적인 이미지만으로도 주술을 걸 줄 아는 폰 트리에입니다만, 이번에는 이야기에도 적잖이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미지를 방치한 것은 아닙니다. 그 쓰임을 다소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한 것 같습니다. 예컨대 <멜랑콜리아>의 오프닝 신에 등장했던, 속도를 한없이 느리게 하고 색감을 과감하게 강조하여 무중력 상태 또는 주술에 걸린 세계처럼 보이게 했던 그런 시각적 충격파는 여기 없습니다. 대신에 조와 샐리그먼이 만난다는 그 무대를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검고 붉은 벽돌들이 겹겹의 막처럼 둘러쳐 쌓이고 그 벽들을 타고 내리는 물들로 그곳이 음습해 보인다는 사실 말입니다. 폰 트리에는 그 첫 장면을 흥분한 여성의 음부로 예감케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뒤이어 등장하는 다른 이미지들도 그런 유사한 느낌들을 전합니다. 나이 든 조가 자기의 유년의 성생활에 대해 말할 때 그걸 듣던 노년의 남자 샐리그먼은 낚싯줄에 묶어두는 유충을 떠올리는데, 영화가 그 유충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순간, 실은 아무 연관성이 없는데도 우리는 마치 비밀스런 무엇을 본 것 같아 흠칫 놀라게 됩니다. 혹은 어린 조가 타고 놀았다는 밧줄의 끝이 화면의 허공에서 꿈틀거리고 있을 때에 우리는 그게 남자의 성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야기들 사이에 이따금 삽입되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영화를 생생하고 이물스럽게 만드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매력은 이 영화가 지닌 유머입니다. 폰 트리에의 영화에 유머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건 대체로 어둡고 탁한 유머들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다소 다른 것 같습니다. 유머가 전면화되어 있습니다. 문자들이 화면 가득하게 등장하면서 귀여운 웃음을 유발하는 건 보통입니다. 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샐리그먼이 조와 제롬의 첫 번째 관계를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해석해낼 때, 조와 그녀의 친구가 기차에서 남자들을 유혹하고 나서 그 승자가 부상으로 가져가는 것이 고작 초콜릿 한통일 때, 미세스 H 여사가 아이들 셋을 대동하여 조의 집으로 쳐들어와 “내 남편과 잠자리를 가진 곳이 여기냐”며 난동을 부릴 때 웃음은 복병처럼 튀어나옵니다. 샐리그먼도 영화 속에서 문득 말합니다. “나는 오히려 그 이야기가 유머러스하게 느껴진다”고 말입니다. 샬롯 갱스부르도 말했습니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며 스토리에 녹아 있는 유머를 느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이 영화를 구태여 하드코어 포르노라고 불러야 한다면, 우린 이제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하드코어 포르노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호불호를 넘어

아직 <님포매니악 볼륨2>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무드에 관한 한 대략의 전모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1부의 끝이며 5장의 끝에서 조는 불현듯 불감증을 호소합니다. <님포매니악 볼륨2>는 거기에서 시작할 겁니다. 사도마조히즘으로 불감증을 치료하는 조의 이야기가 6장의 주요 내용입니다. 7장은 그녀의 색정광으로서의 정체성이 주변에 들통난 뒤에 그녀 스스로도 보통 사람과 똑같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용입니다. 섹스 중독 치료 모임에 나가고 집 안의 모든 튀어나온것들은 뭉툭하게 싸매버리고 자신의 몸을 비추는 거울도 칠해 버리고. 하지만 마지막 8장에 이르면 그녀의 또 다른 변신이 있을 거라고 합니다. 폰 트리에가 쟁점을 몰고 다니는 논란의 예술가라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그의 영화에 관한 호불호는 늘 존재합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지치지 않으며 극단을 추구하는 이런 환자 혹은 변태 하나쯤은 인정해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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