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재밌는 영화가 너무 많아서 미안하다아아!

제13회 미쟝센단편영화제 6월26일부터 7월2일까지 아트나인, 메가박스 이수에서… 꼭 챙겨봐야 할 영화 13편은?

인디포럼,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끝났다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제13회 미쟝센단편영화제가 6월26일부터 7월2일까지 아트나인, 메가박스 이수에서 열린다. 이번 영화제는 상영관이 1개관 늘었고, 작품당 상영횟수 또한 5회 이상으로 늘었다. 보다 많은 관객이, 좀더 수월하게 영화제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다섯개 부문 57편의 상영작이 관객을 만난다. 김지운 감독의 단편 6편도 특별상영될 예정이다. 경쟁부문 57편의 작품 중 반드시 주목해야 할 영화 13편을 선정해 여기 소개한다. 나홍진, 윤종빈, 박정범, 조성희, 허정…. 이 영화제가 배출한 수많은 감독들의 목록에 이름을 아로새길 새로운 재능을 만날 차례다.

<달팽이> 감독 진성민 / 2013년 / HD / 컬러 / 22분12초 / 비정성시

성원과 현오는 고등학교 같은 반 단짝 친구다. 현오가 성원이네 집에 놀러갔더니 성원은 손톱에 정성껏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다. 그런 성원을 타박하던 현오도 어느새 자신의 손톱에 색색의 매니큐어를 바른다. 둘은 다음날 매니큐어를 지우지 않고 등교하기로 약속한다. 현오는 약속을 지킨 반면, 성원은 한쪽 검지만 남기고 모두 지운 채 나타났으며 그마저도 밴드로 가렸다. 현오의 손톱은 심심하고 놀리기 좋아하는 친구들의 레이더망에 쉽게 포착된다. 현오는 그날 이후 친구들로부터 게이라며 괴롭힘을 당한다.

이제 성소수자의 문제의 초점은 이성애자와 성소수자간의 반목을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성소수자간의 관계 문제로 옮겨가는 느낌이다. <달팽이>에서도 자신이 게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 악랄하게 현오를 괴롭혀야 했던 친구 성원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면 보아넘기기 힘들었을 장면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이 작품은 그 표현상의 과감함으로 치면 잔혹 애니메이션의 계보에 놓일 수 있는 작품이다. 낙서에 가까운 그림체와 일상어투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영화를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큰 충격과 울림을 받을 것이다.

<일등급이다> 감독 이정호 / 2013년 / HD / 컬러 / 25분57초 / 비정성시

제목만 들으면 수능 1등급을 향해 전진하는 고교생들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 이야기는 노인들의 이야기다. 노인들에게 마련된 명문학교는 요양원이다. 심사에서 1등급을 받으면 마치 전액 장학금을 받듯이 무료로 입원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 속 노인들은 고등학생들이 수능 1등급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듯 애를 쓴다. 김 노인의 아들은 딱히 말은 안 하지만 요새 자금 사정이 어려운 눈치다. ‘나만 없으면 집 보증금을 빼서 아들 혼자 잘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고민하던 김 노인은 최근 친구 박 노인이 요양원 입원을 앞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등급심사에서 1등급을 받아 무료로 들어가게 됐단다. 박 노인의 1등급 비결은 바로 감쪽같은 연기력이다. 실제로는 멀쩡하면서도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채 옴짝달싹 못하는 것처럼 연기한 것이 먹힌 것이다. 그날부터 김 노인은 친구의 1등급 비법전수 특별 과외를 받게 된다. ‘웃픈’이라는 수식어는 결코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영화는, 웃기고도 슬픈 것이 어쩌면 죽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삶의 속성임을 보여준다. 김 노인의 아들의 존재를 통해 청년백수, 결혼 불가능 문제 등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세대의 문제보다는 노인들의 교감에 초점을 맞춘다.

<마침내 날이 샌다> 감독 한인미 / 2013년 / HD / 컬러 / 28분20초 / 비정성시

13살 혜주는 안경잡이다. 혜주는 언젠가 아버지가 한, “눈이 좋아지려면 초록색을 많이 봐라, 아니면 멀리 있는 것을 보거나”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혜주는 아직은 가까이 있는 것이 더 궁금하다. 어째서 윗집 아이는 아파트 발전기 속에 돈을 숨기는 걸까. 오빠는 왜 집에 여자친구를 데려오면 나를 쫓아내는 것일까. 오빠는 여자친구의 어디가 좋은 것인지, 그리고 왜 오빠의 방에는 다 쓴 콘돔이 굴러다니는지 혜주는 알고 싶기도 하고, 모르고 싶기도 하다. 혜주의 조숙한 친구는 삶에서 경험해봐야 할 필수코스로 ‘SSDK’(스모킹, 섹스, 드링킹, 키스)를 벌써부터 주창한다. 반면 혜주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탈은 채팅 친구인 고등학생, 로맨스 조와 실제로 만나는 것이다. 자신을 쫓아낸 오빠 때문에 홧김에 로맨스 조와 만난 혜주는 두 번째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갑자기 겁이 나서 도망친다. 위에서 언급한 아버지의 말은 처음에는 자막으로, 마지막에는 혜주의 독백으로 두번 반복된다. ‘눈이 좋아지려면’에서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영화를 찍는 감독의 시선과 무언가를 목격하게 되는 사춘기 소녀의 시선이 영화에서 살포시 겹친다. 사랑스러운 ‘초딩’ 어투를 구사하는 혜주 역의 배우가 인상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감독 유지영 / 2014 / HD / 컬러 / 33분 / 절대악몽

여고생 호진은 학교 선생인 유부남 영호와 애인 사이다. 학교 뒤편 외진 아지트를 둘만의 공간 삼아 틈틈이 데이트를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호는 아내가 임신했다며 호진을 피하기 시작하고, 영호에 대한 호진의 집착은 커진다. 호진이 영호에게 집착하는 만큼 동급생 용진은 호진에게 집착하고, 그런 용진 뒤에는 친구 찬수가 있다. 여기에 학생들 앞에서 이성복의 시를 읽어주는 문학교사와 열성적이지만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체육교사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호진이 주인공이지만, 나머지 인물들도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움직인다. 그러니까 다른 인물들이 주인공의 서사를 위해서만 복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주요 인물들이 많음에도 이들을 잘 엮어내는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다. 영화의 제목은 이성복의 시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다. 영화에서 실제로 이성복의 시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공포의 원인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존재하지만 그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인물들간의 연결성이 조금 선명해진다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감독은 공포를 카메라의 움직임과 음향의 조화를 통해 구현하려고 하며 이것은 담벼락 벽돌의 구멍을 통해 줌인하는 첫 장면부터 잘 드러난다.

<한국관광> 감독 국우종 / 2013년 / HD / 컬러, 흑백 / 17분10초 / 절대악몽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해도 특정 장소에 들어서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한국관광>은 완전히 없애지 못한 기억의 공포를 다룬다. 유나는 캘리포니아로 이민간 지 20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교회에서 알고 지낸 동생 은혜가 유나를 맞는다. 고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은혜는 불쑥 유나에게 “임신했냐?”고 묻는다. 유나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배가 나와 보인다는 둥 이상한 말을 늘어놓던 은혜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사라지더니 30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고궁 정문 앞에서 사진 찍는 장면이 있을 뿐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두 여자의 관계가 영화의 핵심인데, 두 사람은 서로 언니, 동생이라고 부르지만 그리 친밀해 보이지 않는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은혜는 실제적인 인물이기보다는 유나의 과거와 관련된 누군가의 영매로서 존재하는 인물에 가깝다. 극중 공포를 느끼는 인물은 유나인데, 유나의 존재가 오히려 더 관객에게 불길함을 안기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것은 고전 괴기물에서 본 듯한 배우의 얼굴이 한몫하는 것 같다. 흑백 화면으로 진행되다가 단 한번 컬러로 전환되는 장면에 주목할 것.

<집으로> 감독 전효정 / 2013년 / HD/ 컬러 / 18분16초 / 절대악몽

소나기가 내리던 날 승우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한 여학생에게 시선이 꽂힌다. 함께 내린 두 사람은 잠시 정류장에 머문다. 승우에게는 우산이 있고 소녀에겐 우산이 없다. 망설이는 사이, 소녀는 가방을 머리에 얹고는 뛰어가버린다. 소녀는 얼마 가지 못해 비를 피하기 위해 멈춰서고 결국 소년과 한 우산을 쓰게 된다. 소녀는 집에 도착하기 전에 ‘여기까지만 데려다달라’며 뛰어가버린다. 소녀가 사는 곳은 고층 아파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달동네다. 자신이 사는 곳이 창피한 것일까? 아니면 소년이 무서운 것일까? 승우는 그런 소녀를 미행하지만 소녀는 한참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비오는 골목을 빙빙 맴돌기만 한다. 서로 맴돌던 둘은 골목 어귀 담벼락에서 다시 만난다. 비오는 버스정류장은 때로는 로맨스가, 때로는 범죄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집으로>는 둘 모두에 대해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거기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청소년들의 방황기라고도 하기도 어렵고, 고층 아파트와 마주 본 달동네라는 장소를 통해 서로간의 격차를 이야기하는 작품도 아닌 것 같다. 영화는 반전에 가까운 결말을 안고 있는데, 반전을 통해 이전의 장면을 돌이켜보면 무섭다기보다는 슬픈 마음이 든다.

<감기> 감독 정지연 / 2014년 / HD / 컬러 / 14분30초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여고생 유코는 어느 날, 감기로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앓아눕는다. 하지만 아픈 몸보다 연락이 되지 않는 한 남자가 그녀를 더 아프게 한다. 결국 유코는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의 눈을 피해 몰래 낯선 동네로 그를 찾아 집을 나선다.

정지연 감독의 <감기>는 ‘한/일 합작 워크숍’을 통해 제작된 작품으로, ‘합작’이라는 ‘우선의 난제’를 일본인 소녀 유코와 그녀가 사랑하는 한국인 남자 사이의 실패한 ‘소통’의 양상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하지만 많은 합작영화들이 서로 다른 둘 사이를 ‘균등’하게 오가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다 어느 쪽에서도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과 달리, <감기>는 용감하게 영화의 방점을 유코에 찍는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을 끝까지 따라가려고 애쓴다. 클로즈업으로 흔들리며 담긴 유코의 얼굴들엔 말이 필요 없는 섬세한 감정이 담겨 있다. 여기에 요즘 한국영화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유코의 얼굴의 ‘유니크’함은 단편인 이 영화를 좀더 길게 보고 싶도록 만든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온 유코의 얼굴을 살피며 “괜찮아?”라고 묻는 대신 영화는 그녀가 2층 방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길게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카페 뤼미에르>에서 허우샤오시엔이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주인공 요코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만일의 세계> 감독 임대형 / 2014년 / HD / 컬러 / 20분39초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만일과 주희는 오래된 연인이다. 주희에 대한 사랑이 여전한 만일과 달리 주희는 취업에, 장래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대책 없이 순정파인 남자친구 만일이 답답하기만 하다. 주희의 마음을 살피고자 만일은 주희에게 함께 일몰을 보러 뒷산으로 산책 가자고 제안한다.

‘만일’이라는 작명의 재치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러니 ‘만일의 세계’는 주인공 만일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만약에’(what if)로 이루어진 가정의 세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두 세계를 그리 멀리 놓지 않는다. 현실에서 반 발자국 정도 발을 떼어놓은 만일의 세계는 너무도 현실적인 주희의 세계와 번번이 부딪치고 깎여, 산 너머 지는 해처럼 자꾸만 작아져만 간다.

이장욱의 동명의 시에서 영감을 얻듯 출발했지만, 시를 영화로, 가정을 현실로,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사랑의 이야기로 옮겨오려는 감독의 노력이 영화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담피소> 감독 박인희 / 2013년 / HD / 컬러 / 19분30초 / 희극지왕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단편영화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길어졌다. 물론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지만, 중편으로 넘어갈 듯 말 듯한 이 어중간한 길이가 단편영화의 ‘짧음’(短)이 주는 묘미를 잃어버리게 했다는 사실은 슬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인희 감독의 <담피소>는 19분이라는 상영시간 동안 단편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특유의 즐거움을, 딱 그만큼의 분량으로 무리하지 않고 보여준다.

‘담피소’(담배 피우는 소녀) 절친인 세 여고생은 어느 날 학교 앞에서 ‘바바리맨’과 마주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에 소녀들은 넘쳐나는 호기심과 오기로 ‘그놈’을 잡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탐색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이런저런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소년들에 비해서 사춘기 소녀들이 겪는 성적 성숙의 문제는 사실 여러 사회적 이슈들과 묶이면서 이제껏 많은 경우 무겁게만 다루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담피소>는 성적 호기심의 주체로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어 흥미롭다. 여기에 십대 소녀들이 학교에서 겪는 여러 부조리한 상황들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꽤 신선하다. 무엇보다 영화의 재기 발랄함과 경쾌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완벽한 액션> 감독 이지은 / 2014년 / HD/ 컬러 / 21분52초 / 희극지왕

변변한 배역 하나 맡지 못하고 보조 출연으로 배우 생활을 이어가는 필중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물류 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 현장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조감독이 그곳에서 먼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필중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감독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필중과 조감독이 함께 꾸미는 ‘완벽한 액션’의 촬영과 편집에 꽤 많은 공을 들였지만, 오히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가는 이들의 관계를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해냈다는 점에 더 눈길이 간다. 실제로 필중과 조감독 사이에 벌어지는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이 미묘한 ‘갑-을’ 관계는 영화 전체를 끝까지 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에 ‘올인’한 사람들에게 결국 ‘삶은 곧 영화’인 걸까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게 될 것이다.

<아귀> 감독 송우진 / 2014년 / HD / 컬러 / 19분 / 4만번의 구타

불교에서 윤회의 여섯 가지 길(六道) 가운데 하나인 ‘아귀’(餓鬼)는 속세에서 지은 죄로 인해 도달하는 굶주림과 목마름이 가시질 않는 고통스러운 세계를 뜻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보험 사기를 벌이다 겪게 되는 끔찍한 사건들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돈 앞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나약해서 사악한 인간들을 일말의 측은함도 없이 바라본다.

소재의 특성상 이야기는 단순하고 반전이 담긴 결말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귀’ 같은 세상을 ‘이야기’가 아닌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송우진 감독은 사기에 가담한 4명의 등장인물들을 앰뷸런스 안에 가둔 다음, 과감하게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이 ‘아귀’ 같은 좁은 공간에서 진행시킨다. 이때 이러한 제약을 견디기 위해 세심하게 설계한 카메라의 위치나 움직임, 숏의 크기, 인물들의 동선, 컷을 쪼개는 방식 등에서 감독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더파이트> 감독 이두훈 / 2014년 / HD / 컬러 / 23분8초 / 4만번의 구타

노조원들을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일군의 용역깡패가 투입된다. 소란이 어느 정도 진압됐을 무렵, 한 용역깡패가 사무실에 숨어 있던 노동자 한명을 발견한다. 쉽게 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노동자의 반격이 거세지고, 이제 끝장을 보려는 둘간의 ‘싸움’이 시작된다.

<더파이트>만큼 ‘4만번의 구타’ 섹션에 딱 맞는 영화가 또 있을까? 영화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깡패와 노동자간의 처절한 몸싸움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이들의 터진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뒤섞여 바닥에 뿌려진 핏자국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즈음, 이들은 자신의 싸움이 결국 복수도 저항도 아닌, ‘자본주의적으로 살지 못한 이들’의 공허한 넋두리임을 깨닫게 된다. 꼼꼼한 액션 신의 편집만큼, 자칫하면 뻔한 결론에 빠질 차가운 주제를 뜨거운 액션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가면무도회> 감독 안진우 / 2013년 / HD / 컬러 / 32분57초 / 4만번의 구타

늦은 밤, 피투성이의 한 남자가 한강 다리를 뛰어 건너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쌓여가는 빚을 해결할 수도, 아픈 할머니를 제대로 모실 수도 없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의 ‘가면무도회’는 핏빛으로 물들어간다.

남자의 마지막 선택으로 시작된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그가 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하나씩 설명해나간다. 말하자면 영화 전체가 하나의 플래시백으로 이루어진 셈인데, 그 구조가 조금 특이하다. 왜냐하면 과거 사건들을 설명하던 플래시백의 끝이 영화의 시작, 즉 현재 시점으로 깔끔하게 다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출구를 잃어버린 플래시백’이랄까? 이로 인해 영화의 마지막, 남자가 대면하는 환상은 영화가 끝난 다음 관객의 머릿속에 한참을 머물며 그가 겪은 고통을 자꾸만 되짚어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