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켄 로치라는 이름은 영국을 대표하는 진보주의적 감독 정도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유럽사회 내에서 켄 로치라는 이름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혹자는 그에 대해 “영국의 국보”라며 존경을 표했지만, 그의 영화들은 매번 영국 사회 내에서 좌우를 넘어선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존 힐의 <켄 로치…>는 그러한 켄 로치의 필모그래피를 좇는 밀도 높은 감독론이다. 영화는 집단노동의 산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켄 로치의 주장처럼, 존 힐 역시 켄 로치의 작품 목록을 영국 사회의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궤적 안에 위치시킨다.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60년대 <BBC>의 프로듀서로 입사한 그가 어떻게 영국 계급 문화를 통찰하는 비판적 사회주의자 감독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얼마나 지난한 투쟁을 해야만 했는가는 영국 방송-영화 진영을 압박했던 정치적 검열과 상업적 자본과의 동학 속에서 설명된다. 스타일에 대한 혁신과 자의식이 없다는 부르주아 비평에 반대하며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 한다. 카메라와 스타일은 기록하는 대상과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고 일갈하는 켄 로치의 응수처럼, 존 힐 역시 그의 작품을 부르주아 시네필적 취향 목록으로 한정하는 것에 반대하며, 그의 작품을 둘러싼 논쟁 자체가 가장 중요한 켄 로치 영화의 힘이었음을 피력한다.
올해로 78살인 켄 로치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거의 매년 영화를 만들어냈다. <켄 로치…>는 좌파 영화학자가 그 스스로 거대한 산을 이룬 늙은 영화 예술가이자 사회주의자 켄 로치에게 바치는 진심어린 애정과 존경의 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