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남동철 프로그래머, 이수진 감독, 이화정 기자.
누군가의 고통을 우리는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또 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공주>가 던지는 질문은 실로 묵직하다. 관객은 힘겹더라도 <한공주>와 마주앉기를 택했다. 다양성영화로는 이례적으로 20만명 이상의 관객이 <한공주>와 만났다. 지난 6월9일 CGV대학로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현장도 그중 하나다. 이수진 감독,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씨네21> 이화정 기자가 관객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남동철_직접 각본을 썼다. 어떻게 <한공주>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나. =이수진_기존에도 유사한 소재를 다룬 영화가 많아 나까지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싶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만약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문해봤다. 그런데 내가 제3자로서 이런 사건을 접했을 때 빠르게 분노하던 것만큼의 빠른 자답이 나오지 않더라. 내 고민이 표피적이었구나 싶었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가를 얘기하기보다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공주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 주변인들이 (나를 포함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관객_성폭력 가해자인 남학생 중 한명의 아버지가 가해 현장에서 자신의 아들만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있다. 촬영 당시 배우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나. =이수진_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중요했기에 시나리오를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들에게는 다소 잔인한 시도였지만, 우리가 지금 무슨 영화를 찍고 있는지 알아야 했기에 이 장면을 가장 먼저 찍었다. 그래서 그나마 이 영화가 보다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관객_위의 장면에는 방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외에 거실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폭력 장면이 삽입됐다. =이수진_평론가들 사이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이 꽤 있었다. 우선 이 장면에 사운드가 없다는 걸 말하겠다. 덜 자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슬로모션은 기술적인 사용이었다. 사람들이 이 장면을 불편해할 줄 몰랐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있던 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들을 데리고 나갈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화정_엔딩 신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도 다양하다. 과연 공주는 어떻게 됐을까. =이수진_관객이 느낀 게 정답이다. 다만 ‘공주는 헤엄쳐나가고, 살아나갈 것이다’라는 시나리오상의 이야기가 그대로 연출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공주가 헤엄쳐나가고 난 뒤, 신발이 둥둥 떠오른다. 판타지였다면 과연 그랬을까.
-이화정_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이수진_내가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농담도 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영화가 차기작이 되길 현재로서는 바란다. 단,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기억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