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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그린 그림책을 넘겨보는 느낌 <미녀와 야수>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든, 장 콕토의 1946년작을 통해서든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이야기다. 몰락한 부호의 예쁘고 착한 막내딸 벨(레아 세이두)이 자신에게 줄 장미꽃을 따다 목숨을 저당 잡힌 아버지를 대신해 야수(뱅상 카셀)의 성에 찾아가는데 예상과 달리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에게 측은지심을 넘어 사랑까지 느끼게 되고 야수도 저주에서 풀려나면서 두 사람의 결합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이번 프랑스 실사판에선 한겹의 서사가 덧붙여졌다. 사랑하는 왕비의 간청을 어기고 황금 사슴을 사냥하다 요정의 저주를 받은 야수의 기구한 사연이다.

다른 판본들은 생략했던 야수의 과거를 재창조한 일이 약이자 독이 됐다. 플래시백 조각들을 통해 시간을 넘나드는 구조가 지루함을 줄여주긴 한다. 신화적 상상력의 장도 확장된 듯하다. 그러나 원작의 신비감은 반감됐다. 야수란 그 자체로 매혹적인 존재다. 인간에게 그의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해석 불가능한 야성을 겉으로 드러내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를 매끈한 서사로 포장하는 것은 그를 평범한 인간적 캐릭터로 단순화하는 일이다. 더불어 잦은 시제 전환은 세이두의 내레이션과 함께 이야기의 흐름을 잘게 토막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희생시킨다. 미녀가 야수에게 마음을 빼앗기기까지의 과정이다.

정서에 대한 밀착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그림 같은 장면들이다. 오프닝 시퀀스가 알려주듯, 이 영화는 잘 그린 그림책을 넘겨보는 느낌을 안긴다. <해리 포터>,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등에 참여했던 스탭들로 이루어진 시각효과 팀도 주어진 예산 안에서 스크린이란 화폭을 최대한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미려 공을 들인 것 같다. 숲 속에 잠들어 있던 거대 석상들이 깨어나 활보하는 대목도 예상치 못한 볼거리다. 다만 70여년 전에 콕토가 만들어낸, 시정과 상징으로 살아 움직였던 시적 장면들에 비하자면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는 그림을 영상으로 일깨우기보다 영상을 그림으로 박제해가는 쪽이다. 그럼에도 가슴을 뛰게 하는 한장의 그림이 있다. 성에서 도망쳐 나와 얼어붙은 호수 위를 달려가고 있는 벨을 야수가 뒤쫓는 장면이다. 푸른 밤하늘을 가르며 벨을 향해 뛰어오르는 야수의 모습은 위협적인 동시에 찬란하다. 그가 벨을 제압하고 그녀의 얼굴에 코가 스칠 만큼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댈 때, 그 아찔한 맞닿음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서둘러 다음 그림을 내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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