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헤어 2013 <인간중독> <히어로> 2012 <남자사용설명서> 2011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2009 <불꽃처럼 나비처럼> 2008 <사과> <걸스카우트> <멋진 하루> 2007 <검은집> 2006 <사생결단> <그놈 목소리> 2005 <너는 내 운명> 2003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분장팀 2003 <이중간첩> 2000 <불후의 명작>

김서희 실장은 분장사이기 전에 DJ다. 이른 아침,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분장실에 도착할 배우들을 위해 그녀는 손수 음악을 고른다. 장르는 가요부터 팝송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어바웃 타임>의 O.S.T나 장미여관의 <봉숙이>를 번갈아 틀었다. 가끔 “김광석 노래를 틀어달라”라는 식으로 곡을 신청하는 배우도 있다. 그녀는 ‘오늘 분장 너무 좋아요’라는 칭찬 못지않게 ‘이 노래 너무 좋아해요’라는 칭찬을 좋아한다.

김서희 실장이 이렇게 음악에 신경 쓰는 것은 분장이 누군가의 얼굴을 만지기 이전에 “마음을 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낯을 가리고 무뚝뚝한 성격”이던 그녀는 이제 주변에서 ‘사람들이 너무 실장님만 찾아서 힘드시죠?’라고 물어올 정도가 됐다. 그런 그녀가 여전히 ‘가리는 낯’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스크린이라는 낯’이다. “갈수록 내가 참여한 영화를 부끄러워서 잘 못 본다”는 그녀는 영화 속 분장만 꼼꼼히 들여다보는 대신 영화를 하나의 분장처럼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도 왕가위의 <중경삼림>,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색감이 풍부한 영화들이다.

그녀가 <인간중독>에 참여한 것은 김대우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 속 여자주인공 종가흔 캐릭터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서희 실장의 상상 속 종가흔과 배우 임지연의 얼굴 사이에서 조율이 필요했다. “1960, 70년대 자료를 찾다가 뜨겁고 열정적인 시대에 매혹됐다. 그런데 이를 표현할 메이크업을 임지연에게 적용하면 배우가 가진 본래의 매력이 상쇄돼버리더라.” 때문에 인위적인 분장과 헤어는 최대한 자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60, 70년대에 대한 열정은 극중 미용실에서 수다떠는 것이 낙인 나이팅게일회 부인들을 통해 풀었다. “단발이었던 전혜진의 머리를 부풀리기 위해 위로 띄웠더니 전혜진이 ‘어머, 언니. 도대체 어디까지 올리는 거야?’라고 농을 할 정도였다. (웃음)” 부인회를 이끌던 여장부 이숙진(조여정)에게만 특별히 바깥말음머리가 주어졌다. “다른 배우들이 원해도 ‘그거 여정씨가 해서 안 돼’라고 물리쳤다.”

분장만 하다가 자연스럽게 헤어까지 맡게 된 그녀는 과거 자신의 헤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배우를 만난 뒤 바로 학원에 등록해 지금도 틈날 때마다 배운다. 그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몰래 메이크업을 배웠고, 선생님을 통해 영화분장을 접하며 그 매력에 풍덩 빠졌다. 16년간 분장을 하면서 그녀가 느낀 아쉬움은 분장에 있어 과감한 표현을 받아들여주는 분위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영화 <엘리자베스>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가발을 벗은 채 거의 대머리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골똘히 생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배우들이 너무 예쁘다. 배우들이 분장을 과감하게 받아주고, 사회가 이것을 용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

클래식 음반

배우를 다독이는 그녀를 다독이는 것은 틈나는 대로 사모은 클래식 음반들이다. 그녀를 클래식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영화의 O.S.T다.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선생님 몰래 라디오에서 나오는 영화음악을 들으며 실제 영화의 장면을 상상하던 날들 속 어딘가에 지금의 그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