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는 천당이래. 거기와 비교하면 인간 세상은 지옥이고. 하지만 난 당신과 함께 이 지옥에서 살 거야.” <후예>는 멜로드라마다. 중국 신화에서 신궁으로 알려진 예의 이야기를 중국 소설가 예자오옌이 다시 상상해 풀어냈다. 12살 때 나이 많은 이국남자의 일곱 번째 아내로 살게 된 항아는 배의 통증이 조롱박을 안고 있으면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느 날 조롱박이 갈라지며 사내아이가 태어나는데, 발육이 빠른 그 아이를 항아는 예라고 이름 붙이고 돌본다. 예는 활을 기막히게 쏘는 재능을 발견한다. 나라에 오랜 가뭄이 들어 근심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그 원인이 하늘에 동시에 등장한 열개의 태양임을 알게 되고 예는 그중 아홉을 쏘아 떨어뜨린다. 그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벌어진다. 아이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것 같던 예가 항아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이 표현이 몹시 구리게 들리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 그리고 먹기만 하면 불멸의 신이 될 수 있는 붉은 선단을 받은 예는 그것을 항아에게 건넨다. 신뢰의 표시이자 애정의 징표로. 만인의 우러름을 받게 된 예와 그 옆자리에서 지극한 사랑과 존경을 받는 항아는 그대로 영원히 행복할 것 같지만, 그 애정을 과신한 항아는 예에게 다른 여자를 들이미는 실수를 저지른다. ‘일부일처제의 원칙을 잘 따르는 사내대장부’는 이제 ‘여색을 밝히고 쾌락을 좇는 남자’가 된다. 예는 다른 여자를 위해 항아를 버리고, 항아는 그 곁을 떠난다.
예자오옌은 예와 항아의 이야기를 절절 끓고 차게 식고 마침내 신화가 되는 것으로 다시 썼다. 최후의 순간에 항아를 향한 진심을 깨달은 예는 항아를 현세의 지옥에서 피난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선단을 먹고 신이 된 항아는 달에서 고독한 영생을 얻는다. 하지만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이 전하는 ‘예우편’의 예와 항아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열개의 태양을 해결하기 위해 지상으로 파견된 예와 그의 아내 항아에게 주어진 선단은 둘이 나눠먹을 수 있는 크기였다. 둘이 나눠먹으면 지상에서의 영생을 얻고, 한 사람이 전부 먹으면 천상의 신이 된다. 하지만 예와 항아는 지독히도 사이가 안 좋았고, 항아는 남편을 원망하고 저주하다 혼자 선단을 먹어버린다. 예는 신이 되어 떠나버린 아내를 깨닫고 분노와 실망, 슬픔으로 술독에 빠진다. 원래 신화와 비교해 읽으면 <후예>는 특히 재미있다. 소설가가 신화의 인물들을 재배치하는 방식이 흥미롭거니와 모든 인물이 끊임없이 부침을 겪고 변화하는, 그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인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이 변하고 사랑이 변하고 나라가 바뀐다. 홀로 남는 영생은 의미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끼는 이에게는 영생을 빌어준다. 유한한 존재들의 상상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