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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분노할 것인가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14-05-22

한국 언론 문제의 ‘슬기로운 해법’을 위한 언론인 홍세화, YTN 해직기자 조승호 대담

국제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는 68위에 불과하다. 2011년 언론자유국의 지위를 상실,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된 이래 한국 언론은 불신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용산참사, 천안함 사태, 국정원 선거 조작은 물론 최근 세월호 참사까지 이슈마다 끊임없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음에도 언론의 태도는 복지부동이다. 문제가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지만 정작 무엇이 문제인지, 왜 문제가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출구 없는 미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언론을 바로 세울 ‘슬기로운 해법’은 존재하는지 알아보고 싶어 도움을 구했다. YTN 해직기자이자 현 방송기자연합회의 조승호 정책위원장과 <말과 활> 편집인인 홍세화에게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을 들어본다. 변화의 첫걸음은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 것, 그리고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씨네21_두분 모두 <슬기로운 해법>에 출연했는데 영화를 봤는지 궁금하다.

홍세화_그저께 봤다. 왠지 쑥스럽더라. 애초에 한두 작품으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동시대 다큐멘터리로서 언론 문제에 접근을 시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승호_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봤었는데 아들에게 영화에 출연했다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고 하더라. (웃음) 아이들도 함께 봤는데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큰아이는 끝까지 봤다. 오보를 양산하고 불신을 안기는 조중동스런 언론이 방송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는 최근 모습에 서글픔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지금 내가 현직기자가 아니란 사실이 다행스러울 정도다. 다큐에서도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다시 한번 언론 전반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홍세화_제작한 지 상당히 지난 다큐멘터리임에도 시의성이 느껴지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최근 상황은 이명박 정권이 기획하고 실천에 옮긴 방송의 ‘조중동화’가 완료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기득권 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던 기간에는 나름대로 건강한 보도 저널리즘, 특히 방송은 일정 부분 공공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디어법을 힘의 논리로 관철시키면서 지금은 사실상 전멸 상태다. 낙하산 인사를 통한 위에서부터의 강제력과 종편의 탄생, 두 가지 방식을 통해 방송의 조중동화가 실현됐다고 본다.

조승호_기본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아직 방송과 조중동 신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회사 상층부는 권력에 충성하는 이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 안에는 아직도 싸우고 있는 기자들이 있다. 나만 해도 내가 속했던 YTN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지만 YTN 뉴스는 잘 안 보게 된다. MBC 해직기자들은 MBC 뉴스를 안 본다고 하더라. 그만큼 자기가 애정을 가졌던 매체들이 망가지는 걸 보기 힘든 거다. 그런 사람들은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언론사, 방송국은 욕먹어 마땅하지만 아직 많은 기자들이 내부에서 투쟁하며 한직으로 내몰리는 등 핍박받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조중동의 경우엔 회사 방침과 기자들의 생각이 거의 대부분 일치하더라.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방송쪽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본다.

홍세화_희망이 있다면 좋은 일이고 나도 기대하는 바다. 다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경향성의 문제다. 방송국 내부엔 아직 건강한 기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화면을 통해 접하는 뉴스가 곧 방송이고 보도를 통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아직 진행형인 상태를 완료라고 표현한 것이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나름의 근거들이 있다. 단적으로 그동안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담보했던 힘이 어디서 나왔나. 나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형성되었던 노조의 힘이 강력하게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아주 낮은 수준이라도 공공성을 담보해왔던 힘은 바로 거기서 왔던 건데 그것이 지금 와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언론인들에게 선배들의 저항정신이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조승호_그동안 언론이 가진 힘의 중심이었던 노조가 수세에 몰려있는 것도 사실이고 안주했다는 생각도 든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이 노조가 성장하고 힘을 기른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적인 시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예전 선배들을 보면 자신의 모든 생활을 버리고 헌신했지만 지금은 안이해졌다고 할까. 나만 해도 투사형이라기보다는 생활인형 언론인이다. 변명하자면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때는 최소한의 상식은 통했으니까 정권이 바뀐 뒤에도 문제제기를 하면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인사권에 대한 도전을 대단한 항명, 그러니까 옛날로 치면 역모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 만나본 기자들은 하나같이 무력감을 호소한다. 저건 아닌데, 아닌 건 아는데 실제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홍세화_그런 자괴감은 충분히 이해한다. IMF를 겪은 이후 언론 스스로도 자본권력에 대한 저항이 내부에서 충분히 토론되고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그런 학습이 부족했다. 어느 정도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던 것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 흐름으로 흘러갈 때 지적으로든 윤리적 차원이든 상관없이 그러한 흐름에 저항할 수 있을 만한 힘을 키웠어야 하는데 언론인조차 손을 놓고 있었다. 조합원 개개인의 양심과 별개로 지금과 같은 소비 중심의 사회에서 변화되고 있는 노동의 가치와 지위를 지켜낼 필요가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대처나 학습이나 정신적 무장에 게을렀다. 결국 무관심의 확산이 이명박 정권의 방송의 조중동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조승호_부정할 수 없는 지적이다. 흔히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을 두고 채찍과 당근을 예로 드는데, 지금은 채찍은 줄었지만 채찍 이상으로 당근의 힘이 커졌다. 당장에 해직을 당한다고 하면 선뜻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생존권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작은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는 기자들도 많다. YTN에서 시위할 당시 간부였던 선배들은 해고가 아니라 보직에서 밀려날 것이 두려워 등을 돌리더라. 사실 보직이란 건 생존권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종의 특혜 아닌가. 알량한 특권과 양심의 무게를 비교했을 때조차 선뜻 양심을 선택하는 이가 없더라. 권력에 대한 감시, 비판, 견제 기능을 하지 않는 건 언론이 스스로의 기능을 포기하는 짓임에도 말이다. 까놓고 말해 그동안 기자들이 얼마나 특권과 특혜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조승호.

조중동스러움이란?

씨네21_다들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이른바 ‘조중동스러움’의 정의는 무엇인가.

홍세화_언론이란 공기, 말 그대로 공익을 담아야 하는 그릇이다. 우리가 신문, 방송이라고 하면 일정 정도의 권위를 부여해주는 건 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중동은 수구 기득권 세력의 권력과 물적 토대를 유지, 강화, 확대하기 위해 언론을 사적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그게 바로 조중동스럽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논리나 상식도 배제되어 있으며 철저한 힘의 논리만을 따른다. 보도 내용이 거짓이든 아니든 그건 2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특히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무서운 거다.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을 내쫓거나 한직으로 보내는 과정 자체가 그들의 목표와 정체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 하겠다.

조승호_개인적으로 조중동을 언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언론이 아니라 권력이다. 조중동 안에 개인적으로 친한 기자들도 있지만 그들이 내부의 문제나 모순에 대해 비판적인 소리를 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 뼛속까지 이미 권력 집단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조중동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기본적으로는 정부가 나서서 이를 조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보나 악의적인 보도들에 염증을 느끼는 시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좋은 언론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으면 조중동 같은 매체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 생각한다.

홍세화_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조중동의 몰상식한 행태를 알고 있지만 왜 이렇게 영향력이 강할까를 질문하곤 하는데 답은 간단하다. 시민 다수의 무관심 때문이다. 알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할 때, 그런 사람이 다수를 이룰 때 추악한 권력의 남용에 대해 아무런 제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고 행동하려 하지 않을 때 조중동 같은 극단적인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제어할 세력은 사라진다. 조중동이 주류 언론을 주름잡고 있는 현상황은 결국 현재 한국 사회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는 정부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조승호_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위로부터 오는 압력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 인사권이 얼마나 막강한 것인지 체감했다. 예를 들어 YTN에는 보도국장을 함부로 임명하지 못하도록 하는 복수추천제가 있었는데 어느 날 사장이 이 제도를 일방적으로 없애고 보도국장을 임명했다. 이후 사냥개가 주인에게 충성하듯 줄줄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정부는 단 한 사람을 임명했을 뿐이지만 전체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거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더불어 기회가 있었을 때 진보언론이 제대로 영향력을 구축하지 못한 부분도 아쉽다. 부패한 부분을 강제로 도려낼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언론들, 그러니까 <한겨레>나 <경향신문>, 인터넷 매체 등이 선택을 받도록 경쟁력을 키워 조중동을 고사시키는 게 맞지 않을까.

홍세화_진보매체가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조중동에 비해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언론이 힘이 없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를 헤아려봐야 한다. 조중동처럼 극단적이고 뻔뻔한 사익추구 집단은 훨씬 열성적이다. 이들은 단지 매체의 차원을 넘어 전 방위적인 공세를 펼친다. 이른바 지배 체제에 의한 의식화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작업은 언제 어느 장소에서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이에 반대되는 움직임은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의식화 작업에 비해 취약하기 그지없다. 다큐 한두편 보여준다고, 한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건만 우리는 그간 너무 쉽게 포기해왔다. 그걸 강조하고 싶다. 지배 체제에서는 철저히 기획된 의식화 작업을 지속해왔는데 그간 운동권에서 강조해온 의식화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말이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고 확인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이슈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대대적이고 일상적인 신자유주의의 흐름 앞에 버티지 못하고 없어지기 마련이다.

조승호_근본적으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할지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사회 전체를 밑바닥부터 변화시켜 언론을 변화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리고 정치권의 변화를 통해 언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 또한 현실이다. 기자들끼리 농담 삼아 주요 방송 4개사의 표현의 자유 척도를 비교하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SBS는 문민정부 수준, KBS는 6공화국 수준, YTN은 5공화국, MBC는 유신시대라고 자조한다. 내가 보도하고 싶은 뉴스를 보도할 수 없는 환경이란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 현실적으로 이 정부보다는 상식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선다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도 언론 장악은 있었지만 지금 정부처럼 노골적이지 않았고 최소한의 상식은 통할 정도였다. 왜 언론환경이 더 좋았을 때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언론사가 좀더 영향력을 확대해서 시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홍세화_본질적인 부분을 짚어보자면 조중동은 힘을 강화하기 위해 독자들을 위로하면서 편안함을 판다. 하지만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 진보매체는 올바른 것, 상식을 팔아야 한다. 결국 이를 구매해줄 시민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핵심은 편리함에 있고 상식과 정의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관계없다고 느끼는 순간 질 수밖에 없는 구도인 셈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 아쉬움이 있다면 전체적인 가치관이 신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흘러들어갈 때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지향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어야 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있어야 하는 시기였지만 스스로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투항해버린 꼴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뻔뻔하게 지배 체제에 충성 경쟁을 하고 이를 통해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이 각 부문에서 분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스스로 기존 체제에 충복임을 드러내려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솔직히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를 궁극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시민들이다. 이들의 각성과 관심을 끌어들이는 것이 그동안 했어야 할 일인데 이를 소홀히 했다. 어떤 지점에서는 그 게으름과 무관심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거다. 비관과 절망은 다르다. 지금은 냉철하게 바라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홍세화.

언론의 부패, 해법은 있는가

씨네21_그렇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언론의 부패를 해결할 ‘슬기로운 해법’은 무엇일까.

조승호_끊임없이 지적되어온 한국 언론의 문제 중 하나는 이른바 냄비근성이었다. 이슈에 몰려 금방 달아올랐다 식는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 기자들 사이에서 최소한의 윤리강령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내 유야무야됐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같은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한계도 분명하지만 대안 매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흔히 말하듯 보수 30%, 진보 30%가 부동층이라면 나머지 유동적인 30%를 움직일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동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제도적인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홍세화_다큐멘터리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문제제기는 있어도 해법이란 없다. 한 사회가 어떻게 되는가는 결국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가치관의 반영이다. 하루아침에 변화시키고자 하는 건 지나친 요구이자 오만이다. 비유하자면 잡초는 전부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는 잡초를 뽑지도 않으면서 잡초를 한꺼번에 없앨 궁리만 한다. 우선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생각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부터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자신이 진보라고 떠들어대는 이들이 윤리적, 지적 우월감에 젖은 채 공부하지 않는 건 큰 문제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개탄과 평가뿐이다. 우선 일상 속에서 잡초를 열심히 뽑으시라. 무관심을 관심으로 돌리기 위해 이런 다큐멘터리를 나만 볼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이 작품을 보도록 하시라. 내 옆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지속 가능한 변화들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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